교회 예배가 시작하면, 항상 성경본문을 성도가 낭독한다. 어떤 성도는 폭포처럼 우렁차고, 어떤 성도는 잔잔한 시냇물로 스민다. 성경은 성령이 감동으로 읽어서 성도에게 들려주는 구원의 책이다. 성령이 성경을 읽게 해야한다. 아멘!!
오늘, 집 근처 스타벅스에 갔다. 일주일간 새롭게 공사를 한 그곳은 내부가 신부의 모습으로 단장했다. 카운터는 낮아졌고, 테이블의 간격은 넓어졌으며, 종업원의 태도는 빠르고, 경쾌했다. 그곳에서 나는 구석의 테이블에 앉았다. 넓은 공간에서 나의 자리는 좁은 영역이다. 성경 66권을 펼치면, 그 중에서 어느 부분의 1장을 읽다가, 어떤 구절에서 멈춘다. 이사야서 전체는 장안동과 같고, 28장은 스타벅스 까페이며, 그 중에서 2~3구절이 마음에 와 닿을 때, 테이블에 앉는 것이다. 이사야서 28장 까페의 원탁 테이블에서 나는 성령을 만났다. 나는 문장이 복잡하고, 성령은 깊고 간결하다.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있을진저. (중략)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중략) 그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花冠)이 되실 것이라” (이사야 28:1~5)
독주(毒酒)는 독한 술이다. 고량주(高粱酒)는 도수가 매우 높고, 포도주도 그렇고, 소주와 막걸리도 혼미해진다. 술에 취하면 비틀비틀한다. 이사야는 ‘독주 금주령’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독한 철학과 인본주의가 섞여진 사상의 독주를 의미한다. 공산주의 사상이나 자본주의, 성공철학으로 성경을 교묘하게 해석해서 ‘바른 진리’에 ‘독’(毒)을 타면, 성도는 그것을 마시면서 영혼이 서서히 시들게 된다. 이단의 교리가 그렇다. 스스로 마시면 성령에 취한 줄 알지만, 음녀의 독주요, 옛뱀의 술책이다. (통일교 원리강론은 인본의 강력한 독주다. 유사제품들이 많다.)
독주(毒酒)는 들이키면 머리가 핑 돌면서 혀가 꼬이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정신줄이 풀린다. 이단의 교리를 한꺼번에 확 배우면, 독주를 마신 것과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면서 정신줄이 풀리고, 영혼이 유린당한다. 극히 조심해야한다. 성경은 성령이 감동으로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교육하고, 성경의 까페에서 성령을 만나서 사귀는 만남의 장소요, 사랑의 침대요, 안식의 이불이다.
해가 지면, 다시 해가 뜬다. 그처럼 술취한 면류관이 벗겨지면, 그때 하나님께서 참된 면류관이 되신다.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내 인생을 돌아보니, 상당히 많았다. 기도하니 청춘의 때가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내가 높힌 그 면류관을 땅에 떨어뜨리면서, 참회의 기도를 드렸다. 그때, 내 머릿속이 맑아졌다. 내가 믿었던 면류관이 사실은 뱀의 똬리였으니….. 오직 하나님을 바랄지라. 성령의 새 술에 취할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