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생명책이다. 일반책이 아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기도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읽어야한다. 사람이 성경을 읽지만, 성령이 성경속에서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다. 성령이 성경말씀의 문을 열어주고, 말씀을 하셔야 귀에 들린다. 성령이 말하지 않으면, 성경읽기는 수박겉핥기에 불과하다. 읽어도 깨달음이 없는 것은 성령이 침묵해서 그렇다.
나는 하루에 4복음서 1독, 창세기 1독의 빠른 독서력을 과시했다. 그러한 독서는 내 영혼에 해악(害惡)이다. 십자가 복음을 영접하고, 하루에 1장 읽기를 꾸준히 하면서, 1장속에서 2~3구절을 깊게 묵상하는 것이 내 영혼에 보약임을 알게 됐다. 성령은 말씀을 깊게 묵상할 때, 은밀히 나비 날개처럼 미세하게 말씀하신다. 그 음성이 영혼을 소생시킨다.
마태복음 13장에 씨뿌리는 비유가 나온다. 4가지 밭비유로 알려진 천국비유 말씀에서, 왜 천국이 씨로 보일까? 예수님은 노골적으로 “천국은 씨와 같다”고 했다. 천국은 서울의 1억만배 이상일 것인데, 왜 겨자씨처럼 보일까? 너무 멀어서? 마음의 인식관에 철학의 길, 고집스런 돌, 돈의 가시밭이 찌들어 있으면, 천국의 복음은 겨자씨처럼 보인다. 그래서, 자신의 인식에서 들보를 먼저 빼라고 말씀하셨다.
성경말씀이 생명을 주는 말씀인데, 드라마보다 무익하게 여겨진다면, 그것은 읽는 사람의 인식관이 가시덤불로 가득해서 그렇다. 성령을 울부짖어 불로 내면을 쟁기질하고, 죄를 참회하고, 십자가의 곡갱이로 마음을 갈아 엎어야한다.
성경은 총 66권이다. 그중에서 복음서는 4권이다. 각 복음서는 소단원을 ‘장’으로 구분한다. 마태복음은 28장, 마가복음은 16장, 누가복음은 24장, 요한복음은 21장이다. 사건과 맥락에 따라 장을 구분했는데, 각 장마다 작은 사건들이 들어있다. 복음서를 이해하려면, 소제목으로 사건의 맥락을 파악해야한다. 각 장마다 3~4개의 소제목으로 구분되는데, 나는 이러한 성경읽기를 추천한다.
마태복음 1장은 ①예수님의 족보 ②예수님의 성령잉태로 구성된다. 2가지 소제목이다.
① 예수님의 족보 : 예수님의 족보가 맨 앞에 나온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이 살았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이 땅에 오셨다.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사건은 십자가 사건과 거의 동일하고, 마태복음 24장 말세예언 사건은 다윗의 압살롬 피난 사건과 흡사하다.
족보는 가문이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온 조상들은 구원을 받았을까? 므낫세는 이사야를 톱으로 썰어서 죽였다. 므낫세는 족보에 들어있고, 이사야는 족보에 없다. 예수님의 족보에 있는 므낫세는 구원을 받고, 이사야는 구원을 받지 못하였을까? 웃시야와 아하스와 히스기야는 족보에 있으나, 이사야는 없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따라 이 땅에 오셨다. 마태복음 1:23은 이사야 7:14을 인용했다. 가문은 자랑할 것이 못된다.
족보는 시대가 흐르면서 계속 수정된다. 예수님의 족보는 ‘요셉’에서 끝났다. 요셉-예수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예수님 이후로 족보는 어떻게 쓰일까? 마태복음 28:19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다. 예수님의 호적에 들어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호적에 등기된다. 양아들로 입양된다. 이것이 성령의 잉태다. 마태복음 12:50에서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말씀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의 ‘제자’에 괄호를 치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자!! 또한, 맨 끝구절에 ‘너희’에 괄호를 치고, 자신의 이름을 적자!!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2천년 아브라함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원을 받았고, 우리는 2천년전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구원을 받는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혈통을 말하고, 예수님 이후로는 약속에 따라 복음을 믿으면 후손이 된다. 예수님의 씨가 마음에 떨어지면, 예수님의 가족이 된다. 성령의 바람으로 예수의 씨가 택한 자의 마음밭에 뿌려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왕이시고, 믿는 성도의 맏형이며, 진실한 친구다. 여자에게는 오빠요, 영원한 남친이다.
② 예수님의 성령잉태 : 성령으로 잉태된 것은 믿는 자도 있고, 안 믿는 자도 있고, 믿는 척 하는 사람도 있고, 확신하는 자도 있다. 각자 양심과 믿음의 분량으로 고백하면 된다. 믿기지 않으면서 믿는 척 고백하는 것이 가식(假飾)이다. 하나님은 모두 아신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공관복음은 증언하고, 요한복음은 “예수님은 태초에 계셨다”고 선언한다. 요한복음의 선언은 더 믿기지 않지만, 믿음의 분량으로 고백하면 된다.
믿는 성도는 성령으로 다시 거듭난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마리아는 남편인 요셉이 동침하지 않았는데, 잉태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요셉은 그 소문을 듣고서 이혼을 결심했지만,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은 꿈에 나타나서 성령의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살면서, 이해되지 않는 사건과 갈등과 문제를 봉착하면 반드시 기도해야한다. 무조건 외면하려고 하면 안된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해결책을 주신다. 이것이 신앙의 기본이다. 2장에 헤롯의 유아 대학살 사건이 나오지만, 요셉이 마리아를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동침하기 전에 잉태된 것은 자기 자식이 아닌데, 요셉은 그것을 성령의 뜻으로 받아드렸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냐, 아니냐, 그런 생물학적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성령으로 그대가 거듭났느냐가 중요하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