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창세기 창조사역의 프로그램에 맞춰서 예수님을 증언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이 이 땅에 오셨는데, 그가 예수님이다. 그것을 최초로 증언한 자가 있었으니, 세례요한이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들었던 것이다. 요한복음 1:19에서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에게 “네가 누구냐”고 묻는 장면에서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고 했다. 이 대목이 증거를 통해서 “빛의 출현”이 예고된다.
그 빛이 이튿날 출현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걸어서 온 것이다. 세례요한은 알아봤다. 왜냐면 하나님이 미리 세례요한에게 말씀을 하셨다.
“이튿날”이 3번 나온다. 1장 29절에 “이튿날”, 1장 35절에 “또 이튿날”, 1장 43절에 “이튿날”이 나온다. 시작점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출현을 예언한 그 날이다. 3번의 이튿날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만났고, 세례요한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만났고, 안드레와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따랐다. 즉, 안드레와 사도 요한이 세례요한과 나누었다. 예수님도 세례요한과 나누어졌다. 이는 창세기 2장의 물과 물이 나뉜 사건이다. 사도 요한은 창세기 화법으로 예수님의 등장을 비유한 것이다.
2장 1절에 ‘사흘째’가 나온다. 창조사역에서 3일째에 물이 모여서 바다가 되고, 드러난 뭍에서 만물이 만들어진다. 4일째에 ‘시간의 때’가 해와 달과 별이 만들어지면서 창조된다. 어머니 마리아가 초대한 어떤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은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도, 포도주를 만드시는데, “물을 가져와라”고 하신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 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요2:8~9)
여기서 연회장은 피로연(파티) 장소가 아니다. 연회를 맡은 사회자를 뜻한다. 현대인의 성경은 ‘잔치를 맡은 책임자’로 번역하고, 공동번역은 ‘잔치를 맡은 이’로 번역했다. 연회장(宴會長)이 물로 만든 새로운 포도주를 맛본 것이다. 연회장은 어디서 났는지 모르지만, 종들은 안다. 그처럼, 예수님의 말씀이 어디서 왔는지 제자들은 알지만, 연회장(宴會長)에 해당하는 유대교의 제사장(祭司長)들은 맛있는 것은 알지만, 예수님의 존재를 모른다.
예수님의 때는 언제 오는 것인가?
요한이 볼 때, “예수님의 때”는 언제인가?
그 때는 무슨 때인가?
요한복음 2장 13~22에서 성전 정결 사건이 등장한다. 공관복음은 끝에 나오는데, 요한복음은 초반부에 나온다. 드라마로 보면, 초반부에 흡인력있게 시청자들을 끌어드린다. 성전 대청소를 하고,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선포한다. 철거는 쉽지만, 건축은 오랜 기간이 걸린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사흘’이다. 창조사역에서 ‘사흘’과 일치한다. 하나님은 3일과 3일로 창조사역을 행하셨다.
초반부 3일은 빛-하늘궁창-바다와 육지와 만물을 만드셨다. 후반부 3일은 해달별과 시간-물고기와 새-동물과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7일째 쉬셨다. 요한은 ‘사흘’을 언급하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때부터 3일이 후반부 창조사역에 해당한다고 증언한다. 예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모든 죄를 청산하심으로 재창조가 시작된다. 재창조는 ‘성전의 철거’에서 시작된다. 그 성전은 예수님 자신을 말한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고 했고, 20장 19절에서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라고 했다. 창세기에는 없는 새로운 날짜가 등장한다. 창세기는 안식일까지만 있는데, 요한복음은 안식후 첫날 저녁이 나온다. 새로운 창세기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해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하셨다. 이 사건은 모든 창조사역이 끝난 후에 창세기 2:7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를 연상시킨다.
성령을 받으면, 생령이 되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기독교는 성령의 역사다.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모든 죄는 사라지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다.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를 받아드리고, 성령을 받아야만, 하나님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십자가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며, 창조의 필수과정이다. 창조 8일째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죄로 물든 4일, 5일, 6일, 7일을 모두 청산해야한다. 안식후 첫날은 주일이다. 주일은 말씀을 통해서 영혼이 재창조되는 거룩한 날이다. (이것은 요한복음과 창세기를 비교한 개인적 견해이다)
[참고] 숫자 3을 땅의 수라고 보통 말한다. 3일째 땅이 창조되서 그렇다. 1은 빛이 창조되고, 2는 물과 물이 나뉘면서 하늘이 창조되고, 3은 물이 모여서 바다와 땅이 창조되고, 4는 해달별과 시간이 창조되고, 5는 물고기와 새가 창조되고, 6은 짐승과 사람이 창조되고, 7은 안식하셨다. 6은 사람의 숫자, 짐승의 숫자를 모두 상징한다. 8은 요한복음에 나왔듯이 ‘안식후 첫날’이므로 재창조 숫자이다. 8은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창조이므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떠나서 새로운 종교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