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에 세리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드리자, 바리새인들이 수군거렸다. 그때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비유와 함께 ‘아버지와 두 아들 비유’를 말씀하셨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했다”(눅15:13)고 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가거나 이단 종교로 가는 사람은 둘째 아들과 같다. 결국에는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때, 아버지에게 돌아오면, 하나님과 예수님은 맨발로 가서 둘째 아들을 영접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다. 내 어머니는 오늘 내가 고향에 가면, 나를 보고 기뻐하실 것이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예수의 마음이다. 예수님께 돌아오면, 그는 외면하지 않고, 옛날 일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랑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어디서 돌아왔는지, 그것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예수의 품에 돌아왔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고, 죽음을 통한 새로운 생명의 창조다. 둘째 아들은 외국에 유학을 떠났으나, 허랑방탕하다가 유학도 하지 못하고, 거지 신세가 되고, 알바 자리도 구하지 못하다가 아버지의 고향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반겼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서 행한 것이 ‘관계의 죽음’이다. 떠났던 곳을 다시 떠나는 것이 ‘생명’이다. 십자가는 ‘죽음에서 돌이킴’을 말한다. 돼지 쥐엄열매를 먹다가 둘째 아들은 돌이켰지만, 자색옷을 입은 부자처럼 산해진미로 배를 채울지라도, 하나님의 품을 벗어나고, 십자가 복음을 떠났다면, 돌이켜야한다. 영혼의 안식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을 통해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품이 안식이고, 십자가의 그늘이 평안이다. 주님은 십자가 사건 이후, 무덤속에서 안식하셨음을 기억해야한다. 십자가는 무덤속 안식과 부활의 위대한 변화를 창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