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마태복음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의 수확량이 100배, 60배, 30배로 표현하지만, 누가복음은 100배라고 말한다.
길가와 돌밭과 가시밭은 씨가 떨어지면, 결실이 없다. 좋은 땅, 옥토밭에 떨어지면 결실이 최대 100배, 최소 30배다.
씨가 천국이고, 밭은 세상인데, 천국을 위한 옥토밭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야만 농부는 씨를 뿌리러 간다. 씨를 뿌리러 나가면, 농부는 반드시 경작하고, 그 씨를 뿌린다. 농부는 자기 밭만 경작한다. 남의 밭을 경작하는 농부는 아무도 없고, 길은 농부도 밟고 다닌다. 밭은 스스로 쟁기질을 못한다.
복음의 씨앗은 하나님께서 뿌리신다. 만물의 언어로도 뿌리시고, 교회 말씀으로도 뿌리시고, 각자 양심으로도 뿌리시고, 부모님의 꾸중으로도 뿌리시고, 세상 뉴스를 통해서도 뿌리시고, 각장 문제와 사건으로 뿌리신다. 관건은 각 사람의 마음밭이 쟁기질이 되었느냐다. 쟁기질은 하나님이 하시는 고유업무다. 밭이 어찌 스스로 농부가 되랴!!
밭인 사람은 가시덤불을 불태워 거름을 삼아야한다. 가시덤불을 불태우시는 분도 성령님이다. 절대 스스로 안된다. 스스로 된다면, 그것은 감동이 아니고 감정의 표출에 불과하다. 성령의 불이 내려와서 가시덤불을 홀연히 태우신다. 고집스런 돌, 우상의 돌을 파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농부가 밭을 소유하면, 돌을 캐내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선택하고, 갈대아 우르를 버렸다. 하나님은 롯을 선택하고, 소돔을 버렸다.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씨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구원주로 믿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다.
새는 씨앗을 쪼아 먹는다.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게 만드는 모든 지식이 ‘새의 철학’이다. 오직 예수의 마음을 품자. 예수님은 살아서 죽음으로 구원을 주셨고, 죽어서 살아남으로 생명을 주셨다. 살아도, 죽어도, 인생의 영혼을 돌보시는 참 목자는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없다.
겨울이 되면, 밭은 밭을 스스로 포기한다. 그러나, 농부는 밭을 포기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농부되신 하나님은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하시고, 다시 씨를 뿌리신다. 씨를 뿌리고, 때의 봄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다. 이삭을 약속하고, 하나님은 25년만에 결실을 이루셨다. 성경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7번이나 말씀의 씨앗을 뿌리셨다.
①갈대아 우르에서 ②하란 땅에서 ③벧엘에서 ④롯이 떠난후 벧엘에서 ⑤헤브론에서 환상가운데 ⑥99세에 환상가운데 ⑦소돔 심판 전날 ⑧모리아 번제사건 직후
[창21:1-4]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8일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