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비평 / 아스달 연대기]=시청률 7.3% 제작비 540억원, 아스달 연대기(tvN)가 압권이다. 오는 6월 8일 3회가 방영된다. 문명과 부족 사회가 충돌하면서, 운명과 종교와 정치의 원시사회를 드러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사람은 무엇인가?
은섬(송중기)의 어머니는 꿈을 따라 사람의 국가에서 쫓겨나 변방으로 살기 위해서 달아났다. 어머니는 죽고, 은섬은 와한족에서 낯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데, 그는 꿈을 꾼다. 은섬이 꿈을 꾼다는 것이 와한족에선 불가사의한 일이다. 꿈은 신이 줘야하는데, 은섬은 종교적 춤을 배우지 않고, 이미 꿈을 꾼 것이다.
“꿈을 꾼 것은 훔친 것입니다”
꿈은 제사장의 증표다. 부족사회는 꿈을 꾸는 은섬을 재판장에 세우고, “꿈을 훔친 죄”로 추방할 것을 모의한다. 탄야(김지원)는 은섬(송중기)을 변호한다. 은섬은 “나도 모르게 꿈이 찾아와, 나는 어디론가 가게 되는데, 내가 모르는 꿈을 내가 어찌 훔치는가”라고 대답한다. 꿈은 어디선가 주어지는 것이다.
문명의 국가는 칼과 활을 가지고, 드디어 변방의 와한족과 미지의 세계를 점령하는 건축기술이 발달한다. 타곤(장동건)이 이끄는 제국의 군인들이 와한족을 비롯해 태고가 숨쉬는 곳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모두 포로로 끌려가는데, 은섬이 탄야를 구출하려고 목숨을 건다. 그때, 타곤의 군인이 철줄을 던져서 발목을 묶는다. 아스달 연대기는 이것을 ‘이름’으로 상징화했다.
“왜 저는 떠나지 못하고, 왜 은섬은 떠나는가요?”
“그것은 이름 때문이다. 이름이 묶는 것, 너는 탄야다. 그 이름에 묶였다. 너는 와한족의 이름에 묶였다. 너가 떠나려면, 이름을 버리라”
탄야와 어머니의 대화에서
아스달 연대기 2회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의미를 ‘이름’에서 찾고 있다. 이름은 언어이며,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본질이다. 은섬은 ‘은섬’의 이름이 있지만, 와한족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름이다. 은섬이 와한족에 나타난 것이 ‘길한 것인지, 불길한 것인지’ 누구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날 문명제국의 침략을 받은 것이다.
탄야가 철줄에 묶인 발목을 붙잡고, “너는 살아남아서, 우리를 구하러 와!!”
은섬은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탄야를 보며, “이름을 줘!! 내가 포기하지 않게, 너를 잊지 않게!!”
철줄에 끌려가면서, 탄야가 은섬을 부른다. “너는 꿈이야. 너는 나의 꿈, 우리의 꿈, 너를 꿈으로 밤마다 부를께. 꿈아, 꼭 우리에게 돌아와줘!!”
아!! 이런 드라마는 어디서 영감을 받는 것일까? 나는 예수님이 연상되면서, 아!! 주님은 하나님의 꿈이 되셨구나!! 눈물이 스쳤다. 예수님도 이 땅에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시면서, 그 이름의 꿈을 이루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꾸신 그 꿈을 이루셨다. 꿈은 주어지는 것이다. 이 땅의 삶도 하나님이 어찌 하지 못하는 꿈과 같다. 하나님이 바라는 꿈의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