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 기자]=가상화폐는 마약과 좀비같다. 내게는 그렇다. 몇 번 가상화폐에 투자해본 적이 있다. 10만원을 투자하면, 10억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 10만원은 공중분해되었다. 그때가 올 때까지 10만원은 10억의 환상을 주었으나, 때가 되니 10만원은 1원의 가치도 없었다. 가상화폐는 환상에 불가하다. 비트코인을 앞잡이로 내세워, “비트코인처럼!!”의 구호를 외치지만, 결국 한탕주의를 위한 슬픈 장송곡일 뿐이다. 나는 차라리 밥 사먹을 수 있는 돈 10만원이 낫더라!!
꽤 높은 금액을 투자한 적도 있다. 믿을만한 사람이 믿을만한 정보를 가지고 접근해서,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외치는데, 그때도 첩자는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처럼”을 외치면서 내게 이상향을 말하는데, 그는 거짓 선지자였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그만 해야한다. 나는 오늘 하루를 살아갈 것에만 집중하노라!!
나는 현실주의를 좋아한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밥값을 누가 낼 것인가, 그것은 매우 중요한 논점이다.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미래에 다가올 환상의 천국을 꿈꾸지만, 그것이 왔을지라도 너머에는 시꺼먼 어둠이 따라올 뿐이다. 천국은 지금, 현실이다. 나는 나의 약함과 부족과 어리석음과 볼품없는 무능력을 인정한다. 한 달을 살아갈 경제적 여건이 내게 주어지는 것을 보면, 깊은 감사가 샘솟는다.
도처에 좀비가 되어가는 사회현상을 목도한다. 좀비가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좀비의 속성을 갖고 있다. 탐욕의 상징이 곧 좀비다. 나만 잘 살고 보자는 주의, 갑자기 거부가 되어보겠다는 원대한 꿈들의 사탕발림은 언제나 마태복음 4장을 연상케 한다. 흑암은 예수님께 “부귀영화와 권력을 모두 줄테니, 절을 하라”고 했다. 예수님은 단호히 거부했다. 흑암의 보이스 피싱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제안에 속지 않는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오늘 일은 오늘 걱정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다. 많은 재물을 모아 놓는 것이 천국을 담보하지 못한다. 탐욕의 가시덤불이 나를 휘몰아치도록 감아 올리거든, 나는 차라리 베어지리라, 그루터기가 남겨지면, 싹이 올라올 것이다. 내 인생의 그루터기에서 성령의 임재를 가만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