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은 공관복음에 없는 특별한 사건이며, 육체부활을 입증하는 요한의 관찰력이 등장한다. 그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빼돌려 숨겨놓았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제자들은 시체를 도둑맞았다.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예수님이 자신의 육체를 가져가신 것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첫 아담은 땅에 묻혔으나, 후아담은 땅에 묻히지 않고 부활하셨다. 사람들은 보면서도 믿지 못하였다.
요한은 나사로의 죽음을 ‘예고편’으로 보이면서, “이와 같이 이러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나사로가 실제로 살아났듯이, 예수님도 실제로 살아나셨다. 나사로도 무덤밖으로 나왔고, 예수님도 무덤밖으로 나왔다. 나사로는 얼굴에 수건이 싸였고, 수족이 베로 묶인 채로 나왔으나, 예수님은 수건과 베를 그대로 둔 채 부활하였다. 나사로의 부활과 예수님의 부활은 닮았으나, 본질에서 다르다. 육체가 살아났으나, 그 육체가 새로운 육체다.
[요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20: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수건은 머리를 돌돌돌 말아서 붕대를 감듯 감싼 것인데, 육체가 빠져나가니 둥근 공모양을 유지하면서 그대로 있었고, 세마포와는 멀리 떨어져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누군가 시체를 가져갔다면, 세마포와 수건까지 가져가야하는데, 그것만 남겨두고 시체만 가져갈 수는 없다. 이중으로 밀봉된 상자안에 있던 보물이 사라진 것과 동일하다. 무덤과 붕대로 싸여있던 예수님의 육체가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즉, 그 육체가 살아나서 빠져나간 것이다. 살아난 나사로의 육체는 다시 죽었으나, 예수님은 영원히 지금도 살아계신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가? 예수님을 믿는가? 그렇다면, 집안의 가장(家長)인 나사로가 죽고, 슬픈 장송곡이 들려오고, 각종 부고장이 날라와도 하나님의 행하심이다. 결국, 죽을 육체요, 떠날 세상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지, 그것이 급선무다. 언젠가 죽는다. 어떠한 죽음의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