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장창훈 기자]=중1 수학에 집합개념이 나온다. 집합(集合)은 모아서 합한 것이다. 집합기호는 대문이다. 모두가 꿈꾸는 아파트가 원소들에도 주어진다. {1, 2, 3}은 3인 가족이 작은 집을 가지고 있는 형태다. { }은 대문을 뜻한다. { }만 존재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원소(가족)가 없는 공집합이라고 한다. 공집합도 집합이라는 개념도 시험에 자주 나왔다.
전체집합은 우주이며, 세계이다. 믿는 성도에게는 창조주가 집합에 포함된다. 창조주가 집합의 원소가 되면, 창조주를 포함하는 대문은 무엇인가? 이때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는 말씀이 적용된다. 집합이 집합을 원소로 둔다. 하나님은 전체집합인데, 스스로 원소로 들어오신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어제는 진리의 판별식을 배웠다. 세상은 정보혁명의 시대여서, 지식을 지식으로 판별하려고 한다. 그것이 논리적인가? 출처가 확실한가? 이런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반면, 성경은 말과 행동의 일치로서 ‘분별의 기준’을 삼는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맨 끝에 ‘거짓 선지자’의 대표적 행위를 거론하고 있다. 말만 그럴듯하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식을 지식으로 분별하려고 하면, 분별할 수가 없다. 지식은 정답이 없는 모호한 세계여서 그렇다. 지식은 모호함의 세계다. 보수와 진보가 하나가 될 수 없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가 존재함으로 서로 대립관계로서 설계가 되어 있을 뿐이다. 사람은 진보의 옷, 보수의 옷을 취사선택해서 입고, 사람답게 살아가면 된다. 그런데 대부분 옷이 사람을 다스리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했다. 사람이 주체요, 옷은 형식이다.
나는 오랫동안 000 목사에게 속했다. 그것이 자부심이었고, 구원의 증표였다. 구원주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아바타처럼 설계된 구원관이다. 구원이 그렇게 온다면, 차라리 기계를 만들어서 창조주는 구원을 받으면 끝날 것이고, 옛 뱀을 죽여서 천국을 쉽게 만들었을 것이다. 기계적 교리는 뱀의 논리일 뿐이다. 과연, 나는 하나님께 속했는가?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했는가? 성령이 내 안에 있는가?
주술인들은 자신에게만 주술적 능력이 있다고 선포한다. 아스달 연대기를 보면, 흰산족의 아사론이 여기에 해당된다. 제사장 독점권한과 같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모두 제사장 직분을 줬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예수님이 각 개인속에 임재하므로 가능하다. 예수님은 믿는 성도들을 본사 직영점처럼 직접 관할한다. 그래서 성도와 성도는 서로 대등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는 관계이다. 내가 예수님께 속했는가? 그것이 관건이다.
예수님께 속한 자는 예수님의 영이 임한 자가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삶을 살아가는 자이다. 십자가를 지고서, 삶속에서 섬김을 다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변함없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자이다. 행위를 살펴보면, 실체가 금새 들통난다.
이단의 공통된 특징은 “독점권”이다. 독점권으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피라미드로 군림한다. 피라미드는 왕권이며, 속에는 미이라의 썩은 시체가 방부제로 영원불멸을 말할 뿐이다. 거짓의 영생이다. 속으면 안된다.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다. 그 외에는 모두 ‘피라미드식 방부제 영생’일 뿐이다.
사람을 사랑하되, 그 속에 있는 영을 분별해야한다. 분별하려면, 우선 자신이 자신부터 분별해야한다. 자신은 예수님께 속했는가? 예수님께 속했으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교묘히 이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면, 거짓 선지자로 변질될 수 있다. 헤롯의 누룩처럼 곰팡이가 피면, 음식은 부패한다.
성도와 성도의 관계는 서로 섬기는 진부분집합 관계이다. A=B는 A집합이 B집합에 속하고, B집합도 A집합에 속하는 것이다. 피라미드는 A는 B에 속하는데, B는 A에 속하지 않는다. 즉, 일방통행이다. 쌍방향의 섬김 소통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짐승의 권력인 것이다. 인자의 권력은 쌍방향 소통이다. 이것으로 분별한다. (세상 조직은 상하위계질서로 구성되며, 피라미드식 통제다. 관료조직도 여기에 해당된다.)
** 성도의 진부분집합 관계는 요한복음 15장의 “서로 사랑하라”로 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