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장]
31.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장자의 명분은 이름만 있다. 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에서는 팥죽 때문에 장자 명분을 동생에게 팔았다. 구두계약이지만, 에서의 정신이 그만큼 장자권을 경홀하게 여긴 것이다. 창세기 기자도 에서가 장자명분을 판 것에 대해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고 해석을 달고 있다. 예수님은 40일 굶은 상태에서도 마귀의 제안을 물리쳤다. 그때 장자의 명분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에서가 경홀히 여긴 장자의 명분은 ‘신앙적 장자명분’을 뜻한다.
이단들은 장자의 명분을 팥죽과 팔아 먹었다. 하나님의 독생자는 예수님이다. 인류가운데 확정한 구원주로서 장자는 오직 예수님이다.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양아들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상속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 넘겨졌다. 상속(相續)은 서로 잇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이어졌다. 예수님과 이어지지 않으면, 구원은 불가능하다.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면 낭패를 당한다.
장자의 명분은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를 뜻한다. 사막에서 예수님이 시험을 받았을 때, 누구도 없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1:1 관계이다. 권력을 제안했던 마귀는 훗날 대제사장과 가룟유다와 베드로의 몸을 쓰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방해했다. 권력의 반대말은 십자가이다. 예수님은 3년의 사역동안 크고 작은 마귀의 시험들을 그림자처럼 달고 살았다. 어떤 사람은 감기를 달고 살았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이 날마다 졸졸졸 따라 다녔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운명하셨을 때, 비로소 무덤에서 안식하셨다.
그리스도인에게 장자 명분은 무엇인가?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그 의미를 망각하지 않으려고 믿는 성도는 안간힘을 쓴다. 십자가를 날마다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분명 장자의 명분일 것이다. 예수님의 당부사항이 그것이었다. 오늘도 내게 십자가 정신이 있는가? 날마다 기도하는가? 날마다 찬양하는가? 날마다 하나님을 우선시하는가?
장자였던 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대로, 자기의 이상형을 선택해서 헷족속 딸과 결혼했고, 이삭도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에서에게 모든 축복권을 주려고 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뜻과 의향은 고려되지 못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이삭을 바쳤건만, 이삭 가정에서 이삭과 장자 에서가 아브라함의 정신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리브가와 야곱은 하나님의 뜻과 의향을 기억하고, 장자의 명분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이것이 곧 신앙이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면,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겠지만, 새벽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드라마를 보면 한바탕 즐거움이 소나기처럼 쏟아지지만, 믿는 성도는 찬양을 해야한다. 찬양으로 영혼은 성령의 감동속에 침수된다. 찬양은 영혼이 성령의 은혜로 목욕하는 것이다.
장자의 명분은 날마다 우리가 소홀하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기업이다. 신령한 반석이신 주님은 우리를 그림자처럼 졸졸졸 오늘도 따라다니신다. 빛이 되신 주님께서 친히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시니, 우리는 세움의 존재가 되었다. 오직 빛이신 그를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