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인의 눈으로 본 예수
한동안 내 취미는 드라마를 보면서 노트필기하는 것이었다. 방송3사, tvN와 종편방송을 모두 챙겨봤다. 한국의 배우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똑같이 방영되는 드라마인데, 같은 배우가 다른 곳에서 연속 3번 나올 때도 있었다. 악역은 대부분 악역이고, 배우의 성격은 비슷하게 캐스팅되었다. 요즘은 드라마를 선택적으로 보고, 노트필기는 그냥 대충 적는다. 드라마를 졸업한 것 같다.
내 취미는 책에 낙서하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 거기에 뭔가를 적는다. 적은 다음에, 날짜를 쓰기도 하고, 생각나는 것을 계속 적어 놓는다. 몇 달 후에 나는 또 그 책을 읽는다. 그때, 내가 적었던 글귀가 내게 새로운 영감을 준다. 낙서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책은 내 일기장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가라지와 알곡을 그대로 두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가라지를 뽑지 않으신다. 그런데, 이단들은 가라지를 척결한다. 게다가, 성도의 생각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자유의지까지 뽑아버린다. 가라지를 뽑는다면서, 알곡을 뽑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찾지 않고, 보이는 교주를 중심하면, 그 목회는 틀렸다. 성도는 혼자서 하나님을 찾아야한다. 이것이 신앙이다.
내게 귀한 선물이 있다. 지난 7개월동안 들었던 설교들이다. 이 설교는 내가 자주 읽고 묵상한다. 읽을수록 내 마음과 영감을 자극한다. 요단강에 예수님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 들어가시듯, 설교문속에 쑥 들어가서 말씀의 세례를 받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면서 하늘의 음성까지 들었다.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환상까지 보았다. 그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깊게 묵상하면,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하늘과 연결되고, 성령이 임재한다.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함께 하신다.
낙서(落書)는 그냥 편하게 쓰는 것이다. 메모지에 낙서를 하면 그것을 담아둘 수가 없다. 좋은 책에 낙서하는 취미는 좋은 것이다. 좋은 책은 또 꺼내서 읽게 되니, 낙서한 흔적이 훗날 역사가 되고, 자신이 지나온 발자취가 되어준다. 밀림속에 들어갈 때는 걸어온 길에 묶은 리본을 따라 다시 나온다고 한다. 걸어왔던 과거는 곧 내가 가야할 미래일 수도 있다. 반환점을 돌면, 마라토너는 왔던 길을 돌아간다.
이삭을 번제로 바친 아브라함과 이삭은 왔던 길로 하산(下山)했다. 올라갈 때보다 더 견고한 믿음의 연합체로 부자(父子)는 내려왔다고 믿어본다. 사람과 사람의 연합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며, 그리스도가 배제된 연합은 결국 무너진다. 나는 오늘도 성경을 꺼내 읽고, 기사를 쓰고, 설교집을 읽고, 내 인생을 돌아본다. 인생은 하나님과 함께라면, 살만한 존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