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공부하다가 공자를 책으로 만났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유명한 고사성어다. 맹자 어머니가 3번 이사했다. ①공동묘지 ②시장(市場) ③서당으로 옮겼더니, 맹자가 공부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 자식교육은 부모의 환경으로 크게 좌우된다. 누가복음에는 12살 때 예수님의 소년시절이 등장한다.
누가복음 2장에서 천사들의 계시를 받고 태어난 아기 예수는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다”고 했다. 아기 예수가 아이 예수로 성장했다. 2장 41절에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이 가더니”라고 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처럼 부모의 신앙이 아기 예수를 아이 예수로 성장시킨다. 마리아와 요셉이 유월절마다 로마로 여행을 떠났다면 어찌 되었을까? 유월절 습관은 청년 예수때도 지속된다. 부모가 물려준 좋은 신앙의 습관은 평생 간다.
12살 때 예수님은 성전에서 랍비들과 대화하며, 문답식 성경해석을 했을 것이다. 듣는 이들이 놀랍게 여길 정도로 하나님의 지헤가 충만했다. 초등학교 4학년에 해당하는 예수님이 신동(神童)으로 보여지는데,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요즘 학교는 시험중심이지만, 조선시대 유교식 교육은 암기였다. 천자문을 무작정 외웠고, 사서삼경을 달달달 암기했다.
유대인들도 토라를 그렇게 암기했다.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탁월한 언어감각을 가지셨던 것이다. 52절에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라고 했다. 지혜는 곧 성경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영감일 것이다. 예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지혜가 키가 자라듯 성장했다.
우린 때로 성령잉태설을 믿으면서,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을 믿으면서, 예수님이 기적처럼 지혜를 얻었다고 착각한다. 예수님은 지혜가 점점점 자라셨다. 겨자씨가 나무가 되듯이 그렇게 성장하신 것이다. 기적의 반대말은 십자가다. 예수님은 기적처럼 부활하신 것이 아니다. 십자가와 무덤을 통해서 부활하신 것이다. 십자가를 부인하는 곳마다 부활의 주님은 없다. 예수님이 공부하지 않고, 말씀을 암기할 수 있었을까?
마태복음 5장~7장은 매우 길다. 5장 2절에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로 시작하고, 7장 28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로 끝난다. 마태가 편집해서 길게 적은 것일까? 예수님이 쉴 틈 없이 말씀하신 것일까? 녹취록이 없으니,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나는 믿는다.
우리는 천자문과 논어를 외우지 못하지만, 조선시대 대부분 양반들은 중용까지 암기했다. 현대인들은 지혜로운 것 같지만, 고대인들의 미련함보다 미련하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네이게이션 때문에 멍청이가 되었다. 그것들이 없으면, 부시맨이다. 반면, 고대인들은 어떤 도구 없이 혀와 몸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예수님은 설교가요, 말씀의 창조주였다.
[유대인들의 정규교육은 아래와 같다]
– 5살에 토라를 배운다.
– 10살에 토라에 대한 주석을 배운다.
– 13살에 계명에 복종하고, 종교적 성인식을 갖는다.
– 15살에 탈무드를 배운다.
– 18살에 결혼을 한다.
– 20살에 직장을 갖는다.
– 30살에 힘이 최고에 이른다.
– 40살에 지혜를 얻는다.
– 50살에 조언을 할 수 있게 된다.
– 60살에 노년이 된다.
10살에 토라를 배우신 예수님은 12살에 랍비들과 대화를 나누신 것이다. 토라에 대한 주석을 시험보듯 검증을 받고, 졸업을 하신 것이다. 공부하는 예수님이셨다. 13살에 예수님은 종교적 성인식을 가지시고, 탈무드를 배우고, 아버지 요셉이 떠난 후에는 가장(家長)으로서 책무를 다했을 것이다.
공자는 나이와 관련해 논어 위정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5세 – 지학(志學) 학문에 뜻을 두다
20세 – 약관(弱冠) 갓을 쓰는 성인식
30세 – 이립(而立) 독립
40세 – 불혹(不惑) 유혹을 받지 않다
50세 –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령을 알다
60세 – 이순(耳順) 들음에 순종하다
70세 – 종심 (從心所欲 不踰矩) 마음을 따라 행하다
유대인들의 교육은 유교식 교육보다 7년정도 앞선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5살에 토라를 배우고, 공자는 10살에 학문을 배우면서 15세에 학문을 본격적으로 하도록 한다. 성인식도 유대인은 13세에 하는데, 공자는 20세에 하도록 한다. 어린 나이에 성경과 인생과 세상에 대해 기본과 핵심을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다.
맹자 어머니는 맹자를 그렇게 키웠고, 마리아도 성령으로 예수를 낳기만 한 것이 아니고, 그 당시 자녀교육에 맞춰서 유월절마다 절기를 지키면서, 유대인다운 아이 예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조성하였다. 늦은 나이, 48세, 나는 다시 예수님을 공부한다. 공부하는 예수님처럼 나는 오늘도 배움에 매진한다.
** 독립선언문이나, 구구단을 암기하듯, 예수님과 그 시대 랍비들은 성경말씀을 구어체로서 암기하는 능력을 익혔다. 십자가에서도 예수님은 시편을 마지막으로 암기하셨다. 우리가 윤동주 시를 외우고, 조선시대 선비들은 한시를 즐겨 외우고, 당나라 사람들은 이태백의 시를 즐기듯, 예수님도 암기의 달인이셨고, 이사야서 예언서를 즉석에서 편집하는 능력까지 가지셨다. (누가복음 4장 18절 나사렛 사명선포식) 예수님처럼, 우리도 공부해야한다. 인터넷만 믿다가는 멍청이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이 어느날 나타나 성경말씀을 물어보는데, “네이버를 찾아볼께요”라고 대답하겠는가? 예수님은 네이버 없이 산상수훈 말씀을 전하셨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