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신앙서적을 읽으면서, 결국 성경원문에 근거함을 인지한다. 성경원문이 원천(原泉)이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구약정경에 근거했고, 그 시대 문화적 배경의 옷을 입고 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도들과 제자들이 직접 행한 사건들이다. 이 시대 현대인들이 말씀을 어떻게 실천하고 살아야할지, 사도행전을 통해서 스스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바나바와 바울이 마케도냐 지역에 선교사로 활동했다. 매우 성공적인 해외선교활동이 되었고, 안디옥 교회는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그때 바리새파 출신 기독교인들이 안디옥 교회에서 “율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율법을 강조하면서, 십자가 복음은 약화된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대항해서 교리적 언쟁을 벌이고, 결국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회의에 정신 안건을 제출한다. 이방인들의 율법준수 문제였다.
베드로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고 선언한다. 율법에 있든, 율법에 없든, 은혜를 위에서 내려온다. 베드로는 10장에서 이방인 고넬료 백부장을 전도하면서 성령이 실제로 임한 것을 체험했고, 11장에서 사도회의에 보고한 적이 있다.
이제 바나바와 바울이 똑같은 내용으로 13장에서 마케도냐에서 이방인 선교를 하고, 14장에서 이방인의 율법준수 문제를 안건으로 제출한 것이다. 베드로와 야고보는 이방인에게 임하는 구원이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을 확정하고, 기본적인 도덕법 준수를 제시한다.
은혜는 주님이 주신다. 어떤 사람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어떤 단체도 그것을 방해할 수 없다. 율법조차 은혜를 막지 못했다. 성령은 성령 스스로 행하신다. 바리새파에서 온 기독교인들은 율법에 의한 선민사상으로 “율법적 판단”으로 이방인에게 과중된 멍에를 놓으려고 했으나, 성령은 자유를 허락했다. 성령은 영혼을 묶지 않고, 풀어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