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종교뉴스/장창훈]=마태복음 21장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과 제자 공동체는 24장 성전멸망과 25장 비유설교를 마치고, 26장에서 대단원을 마친다. 26장은 유월절 사건이다. 21장~25장이 끝나고,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성만찬 사건을 앞두고, 예수님은 베다니 시몬의 집에 유숙했다. 베다니 마을에서 마리아와 마르다 집에 머물지 않고, 시몬에 집에 머물렀다. 그때 베다니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붓는 사건이 나온다. “장례를 위하여”라는 말씀으로 죽음을 확정하신다.
이 세상에 각종 종교단체가 많다. 예수의 이름을 내걸고, 새로운 종교를 외치는 곳들도 비일비재하다. 재림주라고 내세우는 그들은 예수가 실종된다. 예수의 향기가 서서히 지워지는 이 시대앞에, 그 누가 예수의 향기를 나타낼까? 예수님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베다니 마리아가 향한 일도 기억하게 했다. 복음은 곧 향유옥합 사건과 연결된다. 복음의 향기는 향유옥합이 아닐까?
마태는 이름조차 기록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 여자’를 기억하라고 하지 않고,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기억하라고 했다.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인식했다. 그 여자보다 ‘여자의 행한 일’이 복음과 밀접하게 상관있었다.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향유옥합이 부어졌다.
장례(葬禮)는 죽음이다. 죽음은 별세요, 버려짐이요, 떠남이다. 향유옥합을 부은 베다니 마리아는 예수님께 인생을 붓고, 자신이 속했던 ‘가족의 가치’를 완전히 떠났을 것이다. 그러한 별세가 없다면, 향유옥합을 어찌 부을 수 있을까? 향유옥합은 곧 인생 자체다. 결혼을 주님께 드린 것과 같다. 베다니 마리아는 세상과 결별했고, 예수님도 향유옥합으로 씻김을 받으시니, 세상과 결별한 별세를 향하신다.
베다니 마리아와 대조적인 인물이 가룟 유다이다. 가룟 유다는 상당히 명석한 인물이다. 그는 그 시대 정치적 상황에도 탁월한 식견을 가졌다. 그는 돈궤를 맡았다. 그만큼 신뢰를 받은 인물인데, 예수님을 팔기로 작정한다. 예수님이 있는 은신처를 알려준 댓가로 포상비를 받기 위해서였다. 은30이 포상금이다.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몸과 피를 제자들에게 기꺼이 나눠주신다. “이것은 내 몸이다”고 말씀하시니, 그 말씀으로 떡이 거룩하게 되어서 예수님의 몸이 된다. “이것은 내 피다”고 말씀하시니, 그 말씀으로 포도주가 거룩하게 되어서 예수님의 피가 된다. 이것이 말씀의 창조력이다. 인식관을 통해 이뤄지는 창조사역에서는 믿음과 말씀을 통해서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가 거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