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전 국회의원).
7월 31일 오전 11시 서울 망우공원 죽산 조봉암 선생 묘역에서 60주기 추도식이 올려졌습니다. 청년 조봉암 회원들을 비롯한 300여명의 추모객들이 궂은 날씨에도 참석해주었습니다. 저는 아베 일본의 경제침탈 기도가 노골화되는 것을 의식하면서 추도사를 올렸습니다. 몽양 선생과 깊은 공감을 나누셨던 분이기에 각별한 마음으로 추도사를 썼습니다. 김원웅 광복회장도 반드시 독립운동 서훈을 받으시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60주기 추도사> 죽산 조봉암 선생 같은 품 넓은 지도자가 그립습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님, 기일이 되어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60주기가 됐습니다.
선생님께서 이승만 독재의 희생양이 되시어 세상을 뜨신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4월 민주혁명으로 세상이 뒤집혔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던 저희들은 조봉암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으셨을까, 감옥에서 풀려나서 마음 놓고 활동하실 수 있었을텐데…. 그런 정도의 철없는 얘기를 주고받았었지요.
조금 철이 났다는 청소년들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죽산 선생님과 함께 조국의 평화통일과 진보세상을 꿈꿨던 청년당원들과 활동가들이 4월 혁명을 성공시켜놓고 막상 그들의 꿈과 현실을 이끌어줄 죽산 선생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얼마나 망연자실했을까요? 6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죽산이 계셨던 4월 혁명과 죽산이 돌아가신 4월 혁명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계셔서 진보당이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되 온건하게 질서있게 이끌었다면 민주당도 자신들에게 정권이 공짜로 굴러들어온다고 자만하여 분열과 지리멸렬의 정쟁을 일삼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런 정치상황은 박정희 군부쿠데타 음모세력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을 겁니다. 50년대 험난한 정계에서 이른바 보수 야당 뿐 아니라 여당인 자유당 안에서도 산전수전 다 겪으신 죽산 선생의 식견, 정치력을 인정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았음을 우리는 증언으로 알고 있습니다. 죽산 선생을 살리려는 노력으로 대법원 판결을 1960년초의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루려고 노력했던 여야 정치권의 노력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해방 이후 몽양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에 함께 하시면서 몽양-죽산 두 분께서 나누셨을 대화를 상상해 봅니다. 해방을 맞이하면서 해방의 환희도 잠시일 뿐 좌우 진영 사이에, 그리고 좌와 우 진영 안에서 오랜 독립운동, 혁명운동 그리고 수감생활 속에서 다져졌던 동지애는 간곳없고 대립과 증오가 독버섯처럼 번져가는 것을 목도한 두 민족운동가가 그들만의 동지애로 빚어낸 공통의 언어로 과연 무슨 말씀을 나누었을까요. “우리끼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미워하지 말고 죽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끼리는 믿어야한다.” 이런 말씀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친일파 민족반역자가 아닌 독립운동가 혁명가들끼리 말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그렇게 박해하고 고문했어도 살아남은 두 애국자를 우리는 우리 손으로 죽이고 말았습니다. 분단된 남북이 평화롭게 함께 살게 되기를 바랐던 백범 김구 선생까지 우리 손으로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철이 나고 있는 것일까요? 수없이 많은 애국자들이 우리 손에 죽어갔고 외세의 주도로 벌인 한국전쟁으로 동포들이 무더기 죽음을 당해야했습니다. 전쟁이 분단으로, 정전으로 막을 내리자 국가보안법 빨갱이, 반동분자로 다시 동족사냥이 줄을 이었습니다. 바깥 세상은 냉전시대가 가고 탈냉전시대가 왔다고 했어도 분단된 한반도 안의 세상은 바뀔줄 몰랐습니다.
3면이 바다로, 위쪽으로는 비무장지대 가시철망으로 가로막힌 한반도 남쪽은 자루 속 같았습니다. 이 자루 속에 갇힌 한국인들이 죽산 조봉암을, 몽양 여운형을 다시 불러내고 있습니다.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공화주의를 불러내 자신들과 자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2017년 미국과 북조선이 핵전쟁의 막다른 골목까지 이르러 이 한반도가 핵전쟁의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 아닐까 공포에 질려 있을 때, 문득 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한반도에서 어느 누구도 한국의 동의 없이는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우리는 전쟁을 반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천명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국민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외친 것이지만 그는 북쪽의 동포도 전쟁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던 겁니다. 오늘의 작은 남북 간의 신뢰는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싹튼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당장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공동운명체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을 죽산 선생이, 몽양 선생이 우리에게 오래전부터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죽산 선생 60주기 추모식을 맞아 저 자신의 주제넘은 추모의 말씀을 올렸습니다. 너무 저희들이 게으른 것을 스스로 꾸짖으려는 뜻도 있습니다.
죽산 선생님, 잘 하겠습니다. 선생님처럼 현명하게, 현실적으로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당장 평화통일이 안 되더라도 초조하지 않고 화해 교류 공존번영해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인내해가면 선생님이 목숨을 바쳐 이루시려했던 평화통일도 오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지켜봐주십시오.
2019년 7월 31일 죽산 선생 60주기에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이부영 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