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와 요한복음은 상호 연결된다. 창세기는 우주창조와 만물창조를 기록하고, 요한복음은 약속의 창조를 다룬다. 하나님께서 인간창조의 나머지를 완결하셨다고 요한복음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창세기의 속편이다. 창세기 1:1과 요한복음 1:1이 같은 맥으로 연결된 이유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창조 전 상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로 표현된다. 그때,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나는, 우리는 모두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속에 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위에 수면을 운행하듯 살펴보시고, 빛을 주셔야, 우리의 깊은 동굴속에 빛이 들어온다. 우리의 암흑을 몰아내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빛으로 들어오셔야 가능하다.
요한복음은 그 빛을 ‘예수님’으로 바로 표현한다. 성육신(成肉身)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2번째 성육신이 있다. 성령의 탄생이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성령잉태를 말하지만, 요한복음은 성령잉태가 생략되고, 성도속에 임하는 성령잉태를 말한다.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성도속으로 ‘성육신’된다. 이것이 성령의 임재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셨고,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죽으심으로 성도들에게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를 믿는 자마다 예수님이 그 안에서 부활하신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성령의 비밀이다. 사도바울도 요한신학을 따른다.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죽이고, ‘예수생명’으로 살아야한다.
성육신은 예수님이 마리아의 자궁(子宮)속에 착상해서 말씀이 이뤄진 것이고, 십자가는 예수님이 성도의 영혼속에 착상해서 부활이 이뤄진 것이다. 어머니의 피흘림으로 자녀가 태어나듯,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우리 영혼을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 창세기 속편인 요한복음은 인생의 영혼을 죽은 곳에서 살리신 하나님의 비밀작전이었다.
기습특공 해병대가 적진 속으로 들어가서 죽어야 깃발을 꽂듯이, 하나님은 이 땅에 인간이 되셨고, 인간의 몸으로 죽어서 모든 인간의 영혼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로서 믿는 성도의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리셨으니, 요한복음은 창세기 속편으로, 영혼창조를 의미한다.
오!! 그러므로 십자가를 어찌 멀리 하리요. 내 삶에 말씀이 계시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이 오늘도 나를 빛으로 인도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