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월 3일, 누가복음 3장을 읽는다. 7개월 동안 매일 복음서 1장 읽기를 하다보니, 나는 복음의 달팽이가 되었다. 욕심낼 것도 없고, 하루에 1장씩 몇 번씩 읽고, 관점의 성육신(成肉身)으로 2천년전 그 역사의 현장으로 마음이 내려간다. 그렇게 오늘 하루가 흘렀다. 옛날엔 신문과 세상 것이 즐겁고, 복음은 ‘해야만 하는 의무사항’이었는데, 바뀌었다. 복음서를 읽는 것이 내게 즐거움이 되었고, 세상 뉴스와 책출판은 경제유지를 위해 해야만 한다. 사업 매출이 엘리베이터 오르듯 치솟지는 않지만, 욕심을 버리니, 만족한다.
나는 조선일보 1면보다, 한겨레 1면보다, 네이버 실검 검색 키워드보다, 누가복음 3장이 궁금하고, 누가의 기록이 왜 티베리우스 로마황제와 세례요한을 연결했을까, 기록의 편집을 추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수님은 옥타비아누스 황제를 통해 ‘탄생’과 연결했다. 옥타비아누스는 1대 황제, 티베리우스는 2대 황제다. 요한복음에서 사도 요한이 증거했듯이, 예수님은 빛이고, 세례요한은 빛을 증거하는 등불로서, 1대 황제와 2대 황제처럼 상호 연결된다.
마태는 족보를 맨 앞에 내세워서 ‘왕권 계승’에 못을 박았다. 누가는 족보를 뒤로 뺐다. 족보를 활용해서, 예수님과 하나님을 연결했다. 게다가, 누가는 왕의 족보 대신에 평민의 족보를 택했다. 바로 마리아의 족보이며, 밧세바의 3째 아들 나단의 족보다. 누가의 결정에 마태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방향이 다르니, 취사선택할 족보도 달라진다. 복음서의 다양성은 읽으면 읽을수록 물결이 출렁거린다. 그래서, 나는 복음의 바다를 항해한다.
내가 무엇이 되겠다는 그런 생각도 욕심이다. 날마다 복음서 1장을 읽는 낙(樂)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성령께서 나를 이끌어 가시니, 벌써 저녁이 온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서, 사탄 시험을 받고, 요한이 옥에 갇힌 것으로 서술했다. 자칫, 세례 사건과 사탄 시험과 요한의 투옥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처럼 표현된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지만,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
누가는 그러한 오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옥에 투옥된 이유를 먼저 서술하고, 이후에 세례사건을 기록하고, 족보를 적은 다음에 사탄시험을 배치했다. 오!! 누가의 자상한 편집은 예수님을 이해하는 지평을 확실히 다르게 한다. 이렇게, 사는 날까지 복음과 함께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