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소리와 마귀의 소리”는 마음에서 들려온다.
[서울교육방송 장창훈 기자]=새벽이다. 9월 4일, 가을이 지나간다. 나는 누가복음 속으로 들어왔다. 4일째다. 누가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해 누가를 통해 성령께서 주님의 사역을 새롭게 편집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이 독자층이니, 다윗왕권의 계승을 증거하기 위해 요셉의 족보를 활용했고, 족보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하므로 맨 앞에 뒀다.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반면, 로마를 비롯해 이방인들에게 다윗왕은 식민지 백성들의 왕에 불과하다. 이방인들에게는 ‘천사의 이야기’가 설득력있고, 다윗왕권에서 배제된 ‘나단’을 통한 족보가 파급력이 있다. 그래서 누가는 마리아의 족보를 과감하게 채택했다. PD저널리즘이다.
새벽마다 천마차 2봉지에 골든 그래놀라를 섞어서 먹고 있다. 슈퍼에서 파는 제품인데, 하루를 삶에 있어서 상당히 도움된다. 골든 글래놀라와 과일의 새콤달콤한 만남, 인생은 말씀을 통해 하루를 살아야, 뇌파가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 같다.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임재하신다.
누가복음 3장 22절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 성령이 비둘기같이 강림하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한다”고 했다. 하늘의 소리가 곧 말씀이다. 말씀을 묵상하면, 성령이 비둘기처럼 강림한다. 세례를 받고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기도를 하면, 하늘이 열리면서 성령이 내려온다.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도는 성령을 통한 영혼의 호흡이다.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은 사탄의 시험이 나온다. 시험문제 순서가 약간 다르다. 마태복음은 떡문제, 종교문제, 권력문제로 마귀 시험이 나오고, 누가복음은 떡문제, 권력문제, 종교문제로 시험문제가 나온다. 이방민족이나 유대민족이나 ‘떡문제’는 모두 중요하다. 신앙인이나, 세상사람이나 ‘생존권’은 핵심이다. 이방인들에게는 종교보다는 ‘권력’이 우선이다. 반면 유대종교인들에게는 종교문제가 가장 중요하니, 2번 시험문제가 종교문제다.
마귀가 시험문제를 냈지만, 그 소리는 내면에서 들려오고, 주변을 통해서 주어진다. “이것을 해보라. 대박날 것이다”라면서 돌들이 떡이 되게 하는 기막힌 선악과를 제안한다. 그때 성령이 충만해야 그것을 물리칠 수 있다. 성령은 마귀의 제안을 분별하는 능력을 준다. “40일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고 했다. 성령에 이끌려야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것이다. 마귀는 단서조항이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 붙는다. 그래서, 믿는 성도도 “내가 누군지 알았더라면”이라는 단서조항이 붙지 않게 해야한다. 교만은 거기서 생긴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내가 누군데…..”라는 생각이 가시덤불처럼 올라오면, 마귀가 마음을 유혹한 것이다. 주님은 떡으로 살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산다”고 했는데, 누가복음에는 “떡으로 살 것이 아니다”고 단호히 거절한다.
마귀의 소리는 마음에서 들려온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괜히 주변 사람들을 마귀취급하면 안된다. 주변에서 어떤 소리를 전해줘도, 그 소리를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마귀의 소리는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한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권유했어도, 아담이 거절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아내를 통해 들려온 마귀의 소리를 아담이 받아드린 것이다. 그것이 문제다.
마귀는 순식간에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준다. 누구나 세상을 보면 순식간에 그 영광이 보인다. 그때 조심해야한다. 영광을 쫓아가다가 인생이 날라간다. 인생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세상은 복종을 통한 조직체계이고, 세상을 섬기면 뭔가 될 것같지만, 종국에는 허무(虛無)밖에 없다. 세상은 영원히 머물 장소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해야한다. 마귀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의 단서조항을 붙이면서 예수님을 시험했다.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인데… 사십일 조건기도를 했는데…. 내가 이렇게 했는데….” 기타등등 자신의 공적을 하나님께 내세우면, 그것이 마귀의 소리다. 하나님께 마귀처럼 기도하면 안된다.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시는 것도 하나님이다. 생명이 근원적으로 하나님께 속했으니,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된다. 40일 금식했지만, 예수님은 밥을 구하지 않았다. 오직 말씀, 오직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이 주시면 받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은혜다.
누가복음 4:6에서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가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고 마귀가 예수님께 말한다. 이러한 마음의 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려오면, 마귀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누군가에게 줄 수 없다.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고, 가져가시는 것도 하나님이다. 누가복음 3장을 보면, 마리아의 족보를 통해 올라가니, 결국에는 하나님이다. 인생이 올라가면, 권력의 구조를 올라가면, 결국 하나님이다. 가장 정점에, 하나님을 봐야하다. 그것이 성령의 관점이다.
헤롯대왕은 권력의 소유가 옥타비아누스에게 있다고 믿고서 그에게 줄을 섰고,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베들레헴에 군대를 보내 유아대학살을 일으켰다. 권력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빌라도 역시 로마권력이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있다고 믿고서 여론이 불리하면 유대총독 자리가 위태할 것 같아서 예수님을 십자가 판결에 넘겼다. 그런데, 결국 칼리굴라에 의해 빌라도는 로마본국에 소환됐고, 스스로 자살했다. 비극이다. 권력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권력의 족보’는 살아있는 권력자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말한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동안 떠나니라” (눅4:13)
마귀는 시험을 하고, 잠시 떠났다가 다시 기회를 엿본다. 마귀특성이 그렇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살아가야한다. 성령으로 살지 않으면, 마귀에게 족쇄가 채워져서 인생이 비참해진다. 성령으로 살면, 성령께서 답안지를 주므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것이다.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문제 자체를 거부했다. 마귀의 시험문제를 풀지 않았다. 마귀의 시험은 손대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2장에서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고 했다. 마귀의 시험문제는 만지지도 따먹지도 말아야한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을 먹으면서 살면 된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