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은 ‘마음의 공간이동’이다. 글의 재료는 현실에 있지만, 글을 쓸 때는 미래에서 과거를 추적한다. 그래서 글은 1시간~3시간 후에 쓰는 것이 좋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1시간~3시간 후에 그 사건을 다시 떠올리면서 글을 쓰면 좋다. 방과후 집에서 글을 쓰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쓰는데, 그때 채널을 고정하듯이 기억을 따라 학교 교실에 가야한다.
대부분 학생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상에 앉아서 책상만 보는 것이다. 책상에 앉아서 생각으로 학교를 가야하고, 과거의 그 사건을 연상해서, 현실은 보이지 않고, 과거가 현실로 보여야한다. 과거의 사건이 현실의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이고, 과거의 사건을 ‘불러서’ 데려오는 것이다. 작가는 책상에서 이미 과거로 간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으로 내려오듯, 글쓰는 작가는 창작자로서 어떤 과거의 사건속으로 반드시 들어가야한다. 이것이 상상력이다.
복음서는 장면이동이 상당히 다채롭다. 또한 배경을 정확하게 표시한다. 읽는 성도는 장면의 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추적하면서 2천년전 그 현실속으로 들어가야한다. 이러한 연상훈련을 자주 하다보면, 현실에서 과거로, 미래로 이동하는 능력이 생긴다. 이것은 생각의 능력이다. 나는 지금 이디야 까페다. 글쓰는 법에 대해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펼쳤고, 주변은 커피를 마시는 손님들로 가득찼고, 내가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지만, 지금 나는 ‘복음서’의 누가복음 4장에 있다. 유대광야에서 시험을 받는 예수님, 나사렛 고향에서 메시야 선포식을 하는 장면,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장면,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치료하는 장면, 다음날 새벽에 기도를 하시고 주변 지역사회로 선교를 떠나시는 장면이 지금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복음서는 펼치지 않았다.) 복음서를 읽지 않고, 내 머리는 누가복음 4장을 장면으로 본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복음서를 읽을 때 나는 그 속에 들어가서 문장과 문장속으로 사람의 숨결을 느끼려고 평소 훈련을 해서 그렇다.
글쓰는 것은 생각의 공간이동이다. 지금 글을 쓴다면, 과거의 특별한 사건을 떠올려서, 그 사건을 현실로 느낄 수 있어야한다. 이것이 곧 상상의 근육이다. 책상에서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은 무엇을 써야할지 몰라서이고, 써야할 사건이 떠오르지 않아서이고, 떠오르지 않은 사건을 쓰려고 해서 그렇다. 영화를 본 다음, 영화에 대해 1시간 이후 이런저런 내용을 적어보는 것도 글쓰기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글쓰는 시간은 사건이 발생하고 1~3시간이 가장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