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운명적 만남은 요한복음 4장에 나온다. 남편이 6명이나 있었던 그녀에게 5번 실패한 결혼생활은 아픔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인의 상황에 대해 사두개인들은 7형제의 부활논쟁에서 거론하기도 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제 6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데, 7번째 남편이 주님이 될 때, 그의 삶은 영생을 얻는다. 인생의 참 남편은 누구인가?
옛날 교회를 떠나면서, 내게 성경이 왔다. 한동안 그 당혹감은 딜레마였다. 내가 확증했던 곳을 떠났더니, 왜 성경이 왔을까? 깊은 기도와 묵상과 성찰을 통해서, 성경속에서 과거의 위치를 비로소 재발견하였다. 좌표축의 원점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던지, 십자가는 모든 좌표축의 원점이다. 성경을 읽는 맛을 무엇에 비하랴.
초대교회는 구약 정경만 있었다. 그들은 구약정경을 매일 묵상하면서,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하나님의 사랑을 재발견하였다. 신약성경은 300년 후에 모아진 것이고, 초대교회는 구약성경만 가지고 있었으니, 기독교인들이 구약을 너무 멀리하는 것도 초대교회 정신이 흐려지는 원인이기도 할 것 같다. (나도 개인적으로 구약은 자주 읽지 않는다.)
복음서를 자주, 깊게 묵상하면, 그 사건이 구약성경과 맞물려서 해석이 될 때가 많다. 이것이 진리의 성령이다. 진리의 성령은 마음속에 머물러서 인생의 생각을 운전하시며,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시며,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있게 하신다. 그래서 성도는 날마다 기도와 찬양과 말씀이 내면에서 끊이질 않게 해야한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나무뒤에 숨었다. 그런데, 주님은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드러났다. 그들은 하나님이 불렀을 때, 벌거벗음으로 숨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십자가에서 벌거벗겨졌다. 그들은 살려고 서로를 지목해서 죄를 넘겼고, 주님은 자신이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셨다. 그들은 죄를 지고 숨었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후, 의로서 숨겨지셨다.
아담에게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는다”고 하나님이 말씀했는데, 후아담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의로움으로 수고하지 않았는데, 죄가 씻겨진 것이다. 아담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갔고, 후아담인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육체로 내려와서 그 육체가 하나님으로 돌아가셨다.
성경을 깊게 읽어보면, 그 신비함은 형언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듯, 후아담인 예수님과 교회를 위해서 부활의 옷을 지어 입히셨다. 이처럼, 성경은 다양한 관점으로 읽히고, 깨달아진다. 오직 성경의 주인은 주님이며, 하나님이다. 그 외에는 몽학선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