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십자가로 죄를 못 박았다. 그것을 믿는 자는 십자가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는다. 이후,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린도전서에는 교회 공동체가 지켜야할 거룩한 행실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로마서에서도 나온다. 세상속에서 교회 공동체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한다.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교회 공동체는 율법주의자보다 더 거룩한 행실로서 ‘성령의 지성소’를 지켜야한다. 아멘!! 그래서, 요셉의 결단을 본받자!! 요셉은 종으로 살면서도, 주인집 유부녀의 유혹에도 보디발 집에서 도망쳤다. 유혹하는 손을 뿌리치고, 그 옷이 벗겨지더라도 그 집을 버리고 도망쳤다. 도망쳐서 간 곳이 바로 감옥이다. 이것이 요셉의 결단이다. 벗겨진 옷은 ‘사명’을 뜻한다. 세상적 유혹과 음행에서 도망쳐, 오직 십자가를 향해 달려가자!! 요나의 돌이킴으로 살아가자!! 아담의 범죄를 되풀이하지 말자.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나무뒤에 숨었다. 그 유전자가 가인에게 물려져, 가인은 결국 하나님 앞을 떠났다. 신앙은 그대로 상속된다. 신앙의 좋은 유산을 물려줘야지, 아담과 하와처럼 나쁜 신앙을 상속하면 안된다. 종교인들이 가장 주의할 것은 ‘열심’에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 ‘극단적 광신도’들이 보여주는 ‘폭력성’은 종교적 파괴주의다. ‘종교적 열심’이 비뚤어지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핵무기가 될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점검해야한다. 바리새파의 열정으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고 다멕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사랑의 인물’로 변화되었다. 종교는 곧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교회는 사람의 인성을 성숙시키고, 성장시키고, 영혼을 숙성시키는 것이다. 성육신에서 십자가의 부활까지 모든 과정이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일기는 삶이며, 살아있는 글이듯이, 성령은 살아서 성도들에게 함께 임재한다. 심령의 심비에 말씀을 기록하시는 성령의 거룩함을 우리는 믿어야한다. 교회 공동체의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동체에 죄(罪)가 바이러스처럼 퍼지면, 공동체의 신뢰는 금방 깨진다. 십자가 정신이 교회 공동체에 깊게 뿌리 내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으로 존재하면, 교회는 살아있는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 건물은 환란의 홍수가 쏟아지면 무너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 공동체는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