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눅9:1~2]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복음서를 깊게 읽어보면, 12사도와 70문도에 부여한 권능과 능력이 거의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70문도는 예수님이 직접 임명했다. 행정적 조직으로는 12사도를 중심으로 70문도가 수직적 통제를 받는 것 같지만, 누가복음은 12사도와 별도 독립 조직으로 “따로 세워”라고 말씀한다. 70문도속에 12사도가 포함된 것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대통령 직속조직처럼 70문도는 예수님의 직속관할이지, 12사도 밑의 하부조직이 아니다. 참, 놀랍다. 권력형 관료형 수직적 조직에 익숙한 현대사회에 예수님의 조직은 뭐랄까,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제자(弟子)는 형제와 자녀의 줄임말이다. 스승을 통해 맺어진 문하생들은 모두 ‘제자관계’를 형성한다. 새로운 가족인 것이다. 그와 같이, 예수님을 통해서 맺어진 진리와 성령의 공동체는 예수님 안에서 같은 형제요, 자녀요, 가족이다. 12사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임명한 최초의 제자 공동체이고, 유대교에 속한 신앙공동체이다. 훗날 가룟 유다 대신에 맛디아가 임명되었고, 바나바와 사도 바울이 합류했다.
현대인들은 주님을 믿음으로 70문도와 같은 제자 그룹에 들어가며, 성령이 임하면 성령의 무리에 속한다. ‘무리’는 곧 셀 수 없는 사람들을 뜻한다. 사도(使徒)는 심부름을 받은 무리이며, 성도(聖徒)는 거룩한 무리이며, 성령의 무리이다. 진리의 성령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이 약속한 성령에 따른 성도이다. 아무나 성도에 속할 수 없다. 예수님과 그 십자가의 보혈과 성령의 임재를 받을 때, 성도에 속한다. 십자가의 은혜에서 배제되면, 그 명칭이 달라진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에서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고 했다. 바로 70문도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12사도의 특권층을 구별하지 않고, 70문도에게 같은 능력을 나눠주고, 성령을 받는 모든 성도에게 동일한 능력을 준다. 홍길동은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부를 수 없었으나, 주님은 누구든지 그 이름을 불러서 귀신을 제어할 수 있게 하셨다. 성령은 개인독점과 단체독점이 없다. 믿고 회개하는 모든 자에게 임한다. 예수님과 그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에게는 임하지 않는다.
믿는 성도가 속지 말아야할 것은 마태복음 4장 사건이다. 주님은 경제, 권력, 부귀영화의 속성은 근원적으로 거부하였다. 그것들은 땅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하나님은 세상 것을 점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세상에 속했고, 하나님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성령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부어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권력과 경제와 부귀영화는 가능하면 멀리 두면 좋겠지만, 필요할 때는 주님께서 주신다. 주님께서 주시지 않는데 스스로 취하면 이스마엘이 된다. 정도가 심해서 세상 것을 탐닉하면, 아담과 하와가 된다.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지혜를 추구하면서 하나님과 멀어졌다. 세상은 곧 지혜를 내세우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무색하게 하며, 십자가의 구원은 그 인생에게 근본의 자유를 준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인생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아신다. 오직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삶이 가장 아름답고 거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