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적으로 복음서를 읽을 때, 짜짬(짜장+짬뽕)을 먹듯, ‘마막눅요’를 혼용해서 읽는다. 복음서는 4개 시리즈물이 아니고, 4권의 서로 다른 책과 같다. 부모가 4형제를 뒀다면, 4형제가 곧 복음서다. 그 성격도 다르고, 삶과 생각도 모두 다르다. 4형제가 쌍둥이라고 해도, 취향은 제각각이다. 겉모습만 비슷할 뿐이다.
마태복음은 ‘왕의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마태의 관점이며, 마태를 통해 성령께서 증거하려는 방향이다. 100m 달리기를 하려면, 출발과 도착이 분명하며, 화살을 쏘려면 과녁이 명확하다. 과녁없이 화살을 쏘는 자는 없다. 복음서를 읽을 때, 마태복음은 ‘왕의 책’의 관점에서 읽어야하며, 읽는 독자는 마태가 정한 그 과녁에 서 있어야한다. 즉, 유대인이 되어야한다.
족보를 읽으면, 졸립다. 그런데, 만약에 그 족보가 독자의 족보라면 어쩔까. 이것은 전율에 가깝다. 유다 족속에 속하거나, 이스라엘 민족이라면, 마태의 족보 전략은 적중이다. 이씨 조선의 왕족은 몰락했다. 그처럼 다윗 왕족도 몰락했고, 헤롯 정권이 들어선 그 시대에 ‘마태의 족보’가 ‘예언서’처럼 출판된 것이다.
마태복음에서는 1장과 2장이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다. 드라마로 보면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부분인데, 마태는 세리 출신답게 계산이 치밀하며, 단서의 추적이 명확하다. 가장 결정적 단서는 ‘우리아의 아내’에 있다. 왕의 족보를 적으면서 ‘우리아의 아내’라고 명시하면서, 요셉의 아내 ‘마리아’로 연결하고 있다. 오!!! 구원을 위해 오실 예수여!!!
어떤 종교단체는 이방인의 여인이 족보에 포함됐다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너무 크게 부각한다. 마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다. 마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증거하려고 마태복음을 썼고, 족보를 맨 앞에 배치했다. 거기에 모든 정성과 압축과 심혈을 쏟은 것이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고, 성령은 요셉의 아내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 다윗은 우리아를 죽였고, 밧세바를 취했다. 반면, 성령은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를 잉태하고, 요셉이 임신한 마리아를 데려오도록 했다. 다윗과 완전히 배치된다.
몰락한 다윗 왕조의 요셉에게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가 나타났으니, 하나님께서 직접 오신 것이다. 사람으로서 믿을 수 없지만, 전설도 아니고, 실제였다. 요셉과 마리아만 아는 하늘의 극비였고, 누가복음에는 탄생때 천사의 계시도 있었다. 마태복음은 임신 시점 ‘파혼의 위험’에 놓이자, 가브리엘을 통해 요셉에게 계시를 한다. 몰락한 다윗 왕조는 하나님의 아들이 입양됨으로 ‘하나님의 왕족’으로 부활되는 순간이다.
아담은 흙에서 태어났고, 마지막 아담은 성령의 씨로 태어난 것이다. 인류가운데 하나님이 보이신 가장 위대한 사건이 “성령잉태”다. 이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많고, 나도 그속에 포함되었으나, 요즘 나는 성령잉태설이 마음에 믿어진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면, 불가능이 없다. 건물주는 건물에 대해 마음대로 할 수 있듯이, 창조주는 창조사역에 자유롭다. 인간은 피조물이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해가 안되면 믿으면 된다.
동방박사들의 경배사건은 ‘사무엘의 다윗 기름부음’과 연결되며, 헤롯대왕은 사울왕으로 비유된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피신했다. 그처럼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은 예수님은 어린시절 이집트로 피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