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급 구원”은 없다. 종급-아들급-신부급으로 표현되는 구원의 차원성은 거짓말이다. 속으면 안된다. 종급과 아들급부터 문제가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백성은 죄의 종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신부요, 자녀였으나, 죄의 종이 되어서 그들을 구출하려고 직접 오신 것이다.
죄의 종에서 구출해서, 씻기니, 본래 하나님의 아들들로 복직된 것이다. 탕자가 집을 나갔으나, 아버지의 아들이듯이, 그러나 세상에 속해서 죄의 종으로 살았으나, 아버지가 탕자를 사랑으로 받아주신 것이다. 탕자는 하나님의 종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복직된 것이 아니다. 종급-아들급의 도표는 모순이다.
신부급은 더욱 문제가 많다. 마치 창세기 3장과 같다. 뱀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라고 사탕발림을 해서, 그것을 믿고서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아담과 하와는 마약을 섭취한 듯 환각작용으로 하나님이 된 듯 짧은 흥분만 있었지, 결국 흙으로 돌아갔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고, 교리와 구원은 별개다. 신부급 구원이 사실이면, 모두 하나님의 신부가 되어야할 것인데, 지상천국으로 이 땅에서 그러한 신부급이 될 수 있는가? 1명이 하나님의 신부이고, 나머지는 그 신부를 위한 들러리로 있는 것인데, 어찌 그 이론이 맞을까?
예수님은 그래서 인자의 권력으로 ‘천국의 현실’을 교회 공동체에서 이루신 것이다. “낮은 자가 높다”는 것으로 “종이 되면 주인이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이며, 인격이다. 그렇다면, 신부급 구원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뤄진다면, 하녀처럼 사는 자가 신부가 될 것이다. 과연 신부급 구원을 주장하는 자들이 그러한가? 왕비는 되고 싶으면서, 희생양은 되길 거부하는데, 십자가의 온유함이 있을까? ‘신부급 구원의 허상’을 위해 군림하는 권력아래에서 모두 ‘사랑과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처럼 살 뿐이다.
신부급 구원은 예수님때 이미 이뤄졌다. 예수님이 신랑으로 오셨고, 어린양 혼인잔치는 이삭이 리브가를 맞이하듯, 신부된 교회 공동체를 찾는 것이다. 성령이 직접 임재해서 제자 공동체를 먼저 택했고, 이후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초대교회를 택했다. 교회가 곧 예수님의 신부다. 신랑신부는 ‘부부일체’이듯이, 교회의 머리는 신랑이신 예수님이고, 교회는 주님의 몸된 지체이며, 각 성도는 개인적으로 주님과 신랑신부 관계이다.
거짓 복음은 예수님과 성도의 사랑관계를 깨뜨리려고 ‘교묘한 교리’를 전할 뿐이다. 속으면 안된다. 이미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하여 사랑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신부급 구원을 이룬 것이다. 다른 복음은 없다. 신약(新約)은 새로운 약속이다. 신약(新約)이 곧 신부(新婦)요, 신랑(新郞)이다. 새로울 신(新)이 왜 신약(新約)에 있겠는가? 신랑과 신부 역사이니 있는 것이다.
사랑의 언약이 이뤄진 말씀이 바로 십자가를 통한 죄사함과 무덤에서 부활인 것이다. 이것을 믿는 자마다 마음의 방에서 주님을 만나서 함께 살아갈 것이다.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예수님과 함께 살면 신랑신부의 구원이다. 신랑은 반드시 하늘에서 내려온다.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신랑이 될 수 없는데, 신랑이 되려고 하니, 여자가 남자로 성전환하듯 괴물이 되는 것이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은 “이 땅에 영원히 장가들 것이다”고 약속했고,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장가를 드신 것이다. 다른 복음은 없다. 속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