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월 12일 누가복음 12장을 읽었다. 시작부분에 “수만명”이 예수님을 따랐다. 그런데, 설교가 진행되면서 32절에서 “적은 무리여”로 바뀐다. 급기야, 49절에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 (중략)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다”고 말씀했다. 수만명도 “적은 무리여”라고 볼 수도 있고, 설교를 하다가 청중이 떠나고 남은 숫자가 적어서 “적은 무리여”라고 할 수도 있고, 많은 무리중에서 특별히 제자들을 불러 “적은 무리여”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설교를 상당수가 좋아하지 않은 것 같다. 베드로조차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라고 물을 정도다. 예수님의 설교는 베드로에게 했던 것이며, 제자 공동체에게 한 것이며, 모든 무리에게 한 것이며, 지금 나에게, 우리에게 하는 것이다. 말씀과 상관없으면, 예수님과도 상관이 없다.
11장 바리새인과 점심식사에서 핵폭탄 심판을 던진 예수님은 12장에서 “바리새인들의 누룩, 외식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신다. 11장과 12장은 연결된다. 12장 끝에 “불심판”은 곧 바리새인들에게 던진 그 심판의 불을 뜻하는데, 불이 붙지 않았다. 요나의 표적을 11장에서 보이시겠다고 하시고, 곧바로 바리새인들을 향해 요나의 표적을 보이신 것이다. 요나의 표적은 목숨을 걸고, 적진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것이다. 그런데, 니느웨성은 회개했는데,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고, 죄악이 더욱 거세졌다.
권력, 능력, 재력이 높아질수록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된다. 예수님은 그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그 종파의 누룩이 아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든 형식주의로서, 명예와 권력을 의미한다. 명예와 권력이 높은 자들은 밀실에서 ‘썩은 시체처럼’ 살아간다. 형식주의자들은 은밀히 범죄를 모의하지만, 결국 들통난다. 다윗의 불륜사건처럼!!
어떤 사람이 불쑥 상속분쟁의 중재관이 되어달라고 주님께 부탁하자, 주님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야단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근본 속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능력과 권력과 재력으로 이뤄지지 않고, 그것을 멀리함으로 이뤄진다. ‘멀리함’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바나바는 구리광산을 사도들앞에 바쳤고, 베드로는 배를 ‘주님의 전용 교통수단’으로 내어드리고, 수제자가 되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12:35)
주님은 “청지기 정신”을 요구하신다. 소유가 내게 있으나, 그것은 잠시 맡아둔 청지기로서 살아야한다. 직장이든, 사업체든, 교회든, 가족이든, 재물이든, 권력이든, 주님께서 맡기신 것으로 알아야한다. 소유가 넉넉한 부자는 창고를 짓고 자기 소유를 거기에 쌓아두었으나,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데려가니, 그 소유가 유가족에게 상속되고 말았다.
지금 있는 모든 재산은 결국 누군가에게 상속된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주더라도, 직계가족은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해서, 증여무효를 다툴 수도 있다. 그저, 주어진 것으로 만족하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면서, 청지기로서 소명을 다해야한다. 그래서, 주님은 소유를 팔아서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하늘을 위해 광야생활을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눅12:40)
핸드폰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울린다. 전화를 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핸드폰은 받는 자의 때에 맞춰서 울리지 않는다. 핸드폰처럼, 주님은 주님의 시간에 우리를 방문하신다. 영화 트루먼쇼의 CCTV처럼 위에서 내려다보시고, 갑자기 우리의 삶속에 개입하신다.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에 물을 길러 가는 그 습관을 알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재촉해서 4시간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정오 12시에 야곱의 우물에 도착해, 털썩 주저 앉게 하셨다.
주님은 갑자기 사람으로 나타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수도 있다. 낯선 이방인으로, 익숙한 사람이 낯설게 대함으로, 때론 사랑의 부드러움으로, 성령의 미세한 울림은 ‘사람의 소리’에 함께 섞여서 우리를 찾아온다. 그것을 듣는 자마다 ‘성령의 은혜’가 있으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니라” (눅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