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4장은 어떤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간 사건이 나온다. 초대를 받고 가셨을 것이다. 들어가자마자, 수종병 든 환자가 예수님앞에 놓였고, 주변에는 바리새인들이 엿보고 있었다. 수종병 든 환자가 바리새인들의 질문이었다.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질문으로 답한다. “안식일에 병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라고. 그들이 묻고 싶은 질문을 오히려 말하니, 얼마나 뜨끔했을까? 예수님은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서 문밖으로 보내시고 다시 들어오셨다.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눅14:4)
그때, 청함을 받은 많은 자들이 ‘특석’에 앉으려고 자리다툼을 했고, 말석은 비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혼인잔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끝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바리새인 지도자의 이름이 니고데모라고 한다면, 니고데모는 분명, 말석에 앉으신 예수님을 상석에 앉게 했을 것이다. 세족식때 보여주신 예수님의 성품을 보면, 말석에 앉으시면서 ‘행동의 설교’를 하셨을 것이다. 12절과 13절 사이에, 예수님이 어디에 앉으셨다는 말씀은 전혀 없고, 바로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로 이어진다.
예수님은 그날 잔치에 대해, 초대받은 명단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 같다. 잔치 주인에게는 초대자 명단을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로 바꿀 것을 제안하셨다. 그리고, 전설로 전해지는 ‘메시야의 큰 잔치’에 대한 말씀까지 비유로 하셨다.
25절 이후에는 갑자기 ‘제자도’(弟子道)가 나온다.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버리는 ‘십자가의 도’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십자가는 곧 말석(末席)이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낮아져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까지 내려가셨다. 죽기까지 낮아지는 말석이 바로 영광의 자리였다. 무덤속에서 부활하신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높여주신 때이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한다.
바리새인이 초대한 잔치의 주인은 바리새인 집주인이듯, 하나님의 잔치는 ‘하나님’이 주인이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때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 무덤에서 영광의 부활로 주님을 높여주셨다. 우리도, 주님의 길을 따라야한다.
사는 동안 끝까지 끝자리를 고수하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높여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