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은 풍성한 비유가 나온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잃어버린 동전 하나, 돌아온 탕자 비유가 나온다. 비유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배경이다. 누가는 배경의 옷을 자세히 보이면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1. 비유의 배경
15장만 따로 떼서 보면, 예수님이 세리들과 식사를 했다. 그 장면이 산헤드린 의원들에게 적발된 것이다. 민족주의자였던 바리새파들은 ‘친로마 앞잡이’로 활동하는 세리들을 매우 싫어했다.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친교활동을 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켰고, 세리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요즘, 일본정부와 한국정부가 매우 불편한 상황인데, 어떤 연예인이 공개적으로 “나는 일본제품이 좋습니다”라고 한다면, 어찌 될까? 예수님은 바리새파의 감시에도 그렇게 하셨다. 바리새파의 원수였던 세리들, 바리새파가 죄인으로 규정한 친로마 성향의 인사들과 선교활동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바리새파는 장자요, 돌아온 탕자는 세리들이다. 누가가 제공한 설교문만 분석하면, 그렇다.
#2. 돼지 쥐엄열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둘째가 재산상속을 요구했다. 그때 아버지는 두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했다. 15장 13절에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라고 했다. 둘째는 노골적으로 상속을 요구한 것이고, 첫째는 그 상속에 동의한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현대사회에서도 이런 경우가 종종 나온다. 아버지의 건물을 사전에 소유권 이전을 하거나, 사전증여로서 물려받는 경우가 많다. 장자와 차자에게 각각 밭을 상속했는데, 둘째는 그것을 팔아서 멀리 떠났고, 첫째는 팔지 않고 아버지 옆에서 살았다. 둘째의 인생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점점점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결국 돼지 쥐엄열매를 먹게 됐다. 그때, 탕자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오!! 인생이여!! 아버지 집에 살 때는 돈이 보였는데, 아버지를 떠나 돈이 사라지니, 아버지가 보인 것이다. 내 인생도, 중년을 살아가니, 각종 지식을 쌓고, 세상 뉴스를 읽어도, 만족이 없다. 사막을 걷는 듯, 쓸쓸한 인생길에 갈릴리 해변을 걸어가신 예수님이 자주 생각난다. 바쁠 때는 사람들이 보이고, 아무도 없는 고요한 저녁이 되니, 주님의 고요가 들려온다. 참, 신비한 성령이다. 탕자는 방탕속에서 아버지를 찾았고, 장자는 근면속에서 무엇을 찾았을까?
#3.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
이런 아버지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아버지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자식을 향한 너그러운 사랑을 알지 못한다. 도대체, 얼마나 자식이 그리웠으면, 동구밖에 모습이 보이니, 버선발로 뛰어나갔을 것이다. 아마도, 종이 미리 알려줬을 것이다. 수소문했지만, 찾을 길이 없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재산을 모두 나눠주고, 다시 또 나눠주고…. 예수님은 그런 하나님의 긍휼을 말씀하고 계신다. 장자는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고 비난했지만, 아버지는 묻지 않았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서 잔치를 벌였다.
#4. 장자의 불만
장자는 일하다가 돌아오면서 풍악소리를 들었다. 그때 종이 돌아온 탕자 뉴스를 전해준다. “살진 송아지” 이야기에 장자는 발끈한다. 장자는 아버지에게 “내게는 염소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었다”고 따진다. 여기서, 은밀한 장자의 죄가 들통난다. 바리새인들의 속내다. 장자가 자신의 정체를 정의하길,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었다”고 했다. 율법을 지키는 엄격주의다. 장자는 분노하면서 잔치에 들어가지 않았다. 창세기 4장을 떠올려야한다.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4:5~8)
분노(忿怒)는 자신의 의로움에서 발생한다. 성경은 ‘분노’를 가인의 본성으로 규정한다. 40일 조건기도를 했는데, 모태신앙을 했는데, 30년동안 주일성수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는데, 금식기도 3일을 했는데, 날마다 찬양 10곡을 불렀는데, 십일조를 꼬박꼬박 했는데,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도덕적 금욕주의자로 살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염소새끼’를 잡아주시지 않고, 악한 저들을 위해서는 ‘살진 소’를 잡아주시나이까?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한 형식적 종교주의자다. 바리새인들은 결국 몰락했다. 빨리 돌이키고, 탕자의 돌이킴을 함께 축하하자!! 탕자가 혹시 장자 때문에 집을 가출했다면, 형이 동생에게 용서를 구해야한다. 동생의 죄를 비판하기 전에, 형으로서 잘못을 돌아보는 겸허한 관용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