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장의 레위 남편 이야기는 ‘사사기의 마침표’와 같아서,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사사기는 왜 ‘레위 남편’의 이야기로 끝냈을까? 사사기 마지막 문장은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이다. 요즘 시대는 “왕이 너무 많으므로 자기의 소견대로 왕을 섬기니라”로 바뀔 수 있다. 각종 주의(主義)는 왕들의 미래 청사진이다. 결국, 우리의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왕”이다.
19장은 레위남편과 첩 사건, 20장은 이스라엘과 베냐민 전쟁, 21장은 베냐민 지파 결혼작전이 나온다. 3장에 걸쳐서, ‘레위남편과 첩’의 사건이 펼쳐진다. 과연,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성찰해야할까? 불의를 참지 말고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것일까? 레위 남편의 선악분별일까? 사사기를 쓴 작가는 “왕”에 초점을 맞춰서, ‘베냐민 지파의 사울왕’을 지우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그렇다면, 사사기의 결론은 ‘다윗왕’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
에브라임 산골에 사는 이름모를 레위인의 첩이 음행하고 도망친 그 사건은 매우 보편적인 일상의 사건들이다. 그 사건이 왜 사사기에서 ‘루비콘 강을 건넌 가이사’처럼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일까? 야곱의 둘째 레위와 시몬이 여동생 디나를 겁탈한 하몰과 그 족속을 칼로 도륙하듯, 왜 레위 남편은 첩의 시신을 토막내서, 베냐민 지파를 도륙하는 ‘전쟁’을 도발했을까? 레위남편과 첩의 문제가 민족의 문제로 확산된 것은 불씨가 집을 불태우는 화재사건과 같다. 어리석은 인간의 죄악이여!! 누가 정의를 외치랴!!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 아내를 사랑하며 살 일이다. 죄는 죄를 낳고, 악은 악을 낳는다. 죄악이 씨앗처럼 작았을 때, 싹이 틔지 못하도록 없애야한다. 죄악이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서, 열매를 맺기까지 그대로 방치하면 안된다. 레위남편은 죄악이 점점점 자라면서 결국 첩의 시신을 가지고, 민족의 분쟁으로 확대했다. 죄악의 나무가 민족을 덮은 다음, 어쩌라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