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8장과 19장은 이삭축복과 소돔심판이 나온다. 18장과 19장은 두 아내 이야기다. 롯의 아내와 아브라함의 아내다.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아브라함의 아내는 말년에 이삭을 얻었다. 사실, 20장을 보면 사라의 처지는 서글프다. 후처로 들어간 몸종 하갈은 아브라함의 아내 역할을 했고, 본처인 사라는 자식도 없고, 얼굴이 아름다워 그랄왕에 데려갔다. 궁녀로 뽑혔으나, 남편과 결별하는 그 마음이 어땠을까. 과연,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지키는 것은 무엇일까? 롯이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여서 롯의 처는 소금기둥이 되었을까? 두 아내 이야기는 남편들에게 아내를 어떻게 사랑할지 경고음을 울린다.
18장에서 아브라함이 세 남자를 발견했을 때, ‘장막’에 있었다.
19장에서 롯이 두 남자를 발견했을 때, ‘성문’에 있었다.
두 아내를 결정적으로 달라지게 만든 것은 두 남편이 있던 위치다. 아브라함은 ‘장막’ 그늘에서 찬송을 하고 있었고, 롯은 성문 앞에서 세상 사람들의 민원을 듣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찾는 이가 없었고, 롯은 찾는 이가 많아서 소돔 주민들이 거의 알았다. 유명인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아내를 지키는 보호막일까? 사뭇, 생각이 깊어진다.
롯은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다. 소돔 불량배가 쳐들어왔을 때, 두 딸은 주겠다고 하면서도, 아내는 뒤로 감췄다. 반면,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을 위해서 아내를 그랄왕에게 넘겼다. 인간적으로 볼 때, 롯의 처가 행복할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의 남편’이 되어서, 사라를 지켰다. 오!! 아브라함은 사라를 위해서 매일 눈물로 기도했을 것이다. 오죽 했으면, 세 남자를 융슝하게 대접하고서, 사라의 애로사항을 말했을까? 17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고, 18장에서는 땅에 내려온 하나님께서 사라를 직접 축복한다. 그런데, 롯은 그의 처를 위해 기도했다는 대목이 없다. 사라가 그랄왕의 궁녀로 들어갔을 때, 하나님은 그랄왕 꿈속까지 나타났다. 아브라함이 기도했음이 틀림없다. 사사기 19장에서 첩을 뺏긴 레위 남편은 기도했다는 내용이 없다. 사랑한다면, 기도하는 것이다. 눈물로 하나님께 부탁해야한다. 하나님이 지켜주실 때, 인생은 그 미래가 희망으로 끝난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중략)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니라” (창 18장)
하나님이 돌아오실 때, 약속이 이뤄진다. 아멘!!
** 두 아내는 두 남편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남편에게 좋은 아내는 누구일까? 사라에게 아브라함이 그러하듯, 남편을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로 울부짖는 아내일 것이다. 그런 아내를 둔 남편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