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평행법을 다룬 ‘중동 눈을 통해 본 예수’과 ‘지중해 눈을 통해 본 바울’ 책을 보면서, 성경을 읽는 독특한 습관이 생겼다. 같은 맥락의 사건이 비슷하게 연결되면, 그것을 기점으로 앞과 뒤로 확장해본다. ABBA의 문법으로 성경을 읽는 방법이다.
가령, 누가복음 20장 끝에는 긴 옷을 입고 다니는 서기관과 그들의 악행에 대해 나온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이다. 그런데, 21장에서 갑자기 ‘과부의 두 렙돈 헌금’ 이야기가 나온다. 과부 이야기, 과부 이야기가 연속 등장한다. 이럴 때는 앞의 과부 이야기의 앞부분과 뒤의 과부 이야기의 뒷부분을 서로 비교하면서, 맥락이 같다.
ABBA이다. 두 사건의 맥락이 일치할 경우, 앞의 것은 그 앞의 것, 뒤의 것은 그 뒤의 것이 서로 일치한다. A:B=C:D와 흡사한데, 독득한 닮은꼴이다. 가운데에 있는 두 사건이 서로 비슷하면, 양쪽에 있는 두 사건도 비슷하다. 이것을 히브리 평행법이라고 부른다.
눅20:46 : 긴옷을 입고, 문안받고,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고,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
눅20:47 :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
눅21:1~4 :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가난한 중에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눅21:5 :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며진 성전이 멸망하리라
ABBA = (긴 옷 입은 서기관 심판) (과부의 가산을 삼킴) (과부의 두 렙돈 헌금) (아름다운 성전의 멸망)
서기관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켰지만, 그래서 가난해진 과부는 도리어 하나님께 두렙돈을 바치면서 ‘감사’의 제단을 쌓는다. 하나님은 그런 과부를 보셨다.
서기관은 긴 옷을 입고, 문안 받기를 좋아하고, 잔치를 좋아한다. 경비는 물론 과부의 재산을 삼킨 것이다. 그처럼 성전이 백성의 고혈을 빨아서 지은 것이다. 백성을 위해, 가난한 과부를 위해 긍휼을 베풀어야할 성전기능이 백성을 억압하고 군림하니, ‘심판의 멸망’을 경고한 것이다. 서기관은 성전으로 확장된다. 그렇다면, 갑자기 등장하는 부자들의 헌금은 ‘서기관들’로 추정된다. 서기관들이 과부와 가난한 자들의 재물을 뺏어서 부자가 되어서 헌금을 하고, 재산을 잃은 과부는 생활비를 바친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부조리를 만든 서기관들의 횡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그 누가 가난한 자들의 설움을 알아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