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선지자와 늙은 선지자의 교훈은 무엇인가? 오늘, 문자로 배송된 성경통독의 질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사에 조심하자. 속지 말고, 속이지 말자”라고 생각됐다. 옛뱀은 젊은 부부 하와와 아담을 속여서 에덴동산의 소유권을 뺏었다. 경륜의 지혜를 존중해야겠으나, 항상 주의하고 분별해서, ‘나의 하나님’을 불러야한다. 젊은 선지자는 결혼했을까? 미혼일까? 자녀는? 형제는? 지금으로 말하면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취임식 현장에서 “멸망”을 선포한 것인데, 오!! 그런 패기의 선지자가 너무 일찍 죽었다. 안타깝다. 늙은 선지자가 장례를 잘 치뤘지만, 살지못한 그의 여생은 어떻게 되나? 한번뿐인 인생인데….. 젊은 선지자의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12장에는 젊은 자문단과 늙은 자문단이 나온다. 둘이 상당히 다르다. 늙은 자문단의 ‘원로들’은 예산을 풀어서 백성의 민생고를 해결하도록 르호보암에게 요청한다. 솔로몬은 성전건축과 궁궐건축의 ‘뉴타운 행정’으로 다윗과 유다족속에만 ‘재물’이 모이게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중심의 계획도시가 건설되면서, 지방에 속한 나머지 도시가 낙후된 것이다. 위성도시 건설과 지방의 분권화를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전갈의 채찍”을 두겠다고 강경책을 제시했다. 젊은 자문단의 생각이다. 젊은 자문단과 젊은 선지자는 상당히 과격하고, 직격탄이다. 반면, 늙은 자문단과 늙은 선지자는 ‘적당한 속임수’와 함께 부드러운 정책을 요구한다. 왜 둘은 만날 수 없을까? 늙은 선지자는 젊은 선지자가 죽으니, 그제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린다. 젊은 자문단은 왜 강경책을 거두지 못했을까? 조금 더 양보하면, 연합이 유지되고, 굴레가 강해지면, 삼팔선이 생긴다.
EU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지방분권체제가 매우 강했다. 여로보암은 유다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11지파의 왕이 되었으나,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으니, 그것을 막기 위해서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뒀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사라진 단지파’를 말하는데, 여기에 분명히 ‘단’이 등장한다. 지방 도시 단은 단지파가 살던 곳이다. 그 지역에 뿌리를 내려서, 지방 이름이 ‘단’이 되었다. 그들이 그곳에 완전히 정착했으니, 단군왕검의 조상이 될 이유가 전혀 없다. 지금도 ‘텔단’이란 이름으로 존재한다. 단은 최북단, 헬몬산 바로 밑이며, 동생 납달리 지파 옆이다.
브렉시트처럼, 구속이 너무 강하면 벗어나게 된다.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황제의 권력집착도 매우 강했고, 율법의 굴레도 상당히 강했다.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갑질이 심했다. 율법의 1점 1획도 없어지지 않지만, 율법을 통제의 수단으로 삼은 바리새파와 사두개인들의 전갈정책은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다. 모든 굴레는 사랑외에 무의미하다.
한국은 북한과 친밀관계를 유지하려고, 일본에 대한 속박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반일감정의 속박으로 강경책을 서로 내미니,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처럼 서로 틀어지고 있다. 강경책은 연합을 유지하는데, 결정적 장애물이다. 연합하려면, 굴레를 벗어야한다. 연합하고, 용납하면, 이해의 굴레로 서로가 묶인다. 내가 묶이는 굴레는 아름답지만, 상대를 족쇄로 채우는 굴레는 고달프다.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낮아져 묶이시고 죽임을 당하셨다. 나도 그러한 사랑의 굴레를 본받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