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은 성취됐다. 가장 명확한 증거는 헤롯성전의 멸망(AD70)과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AD313)이다. 로마제국은 사라졌지만, 로마교황청은 건재하다. 그렇다면, 루터는 악마인가?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를 ‘파문’했고, ‘옛뱀’으로 판결했다. 1521년 1월 3일 사건이다. 그해 그 교황은 모기에 물려, 사망했다. 12월 1일이다. 루터를 거짓 선지자로 비난한 교황이 죽었으니, 루터는 옳은가? 레오 10세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지 않았어도, 루터는 정의롭고, 그 교황은 틀렸다. 이것이 곧 성경이다.
갈라디아서에 근거해서, 루터는 ‘면죄부 판매’를 ‘비진리’로 판단했다.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하여, 교황이 면죄부를 판매한 것인데, 어찌 그것이 불법인가? 교회를 위한 일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한 일이다. 그런데, 루터는 ‘면죄부’(免罪符)가 죄를 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성경 어디에 ‘면죄부 판매는 죄다’라고 규정한 곳이 있는가? 없다.
루터는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했을까? 여기서 ‘성경해석’이 나타난다. ‘면죄부’가 성경적으로 ‘율법적 행위’에 속한다고 루터는 판단한 것이다. 물론, 교황은 정반대다. 교황과 교회에 반대하는 루터는 ‘거짓 교사’요, ‘옛뱀’이요, ‘포도원을 해친 멧돼지’였다. 지금 시대는 루터를 ‘참 선지자’로 믿겠지만, 루터는 그 시대의 종교법을 반대한 ‘불법의 신부’였다. 교황청은 수녀와 결혼도 금지했는데, 루터는 수녀와 결혼했다. 금지된 신부와 수녀가 결혼했으니, 교황청의 종교법을 행위로 거부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5: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루터는 바울의 말을 인용해서, ‘할례’에 ‘면죄부’가 속한다고 해석했다. 바울은 ‘면죄부’를 사는 자마다 그리스도께서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의 행위”로서 구원을 받으려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무 유익이 없다고 강조한다. 바울의 십자가 해석에 근거해서, 면죄부는 ‘율법적 요소’에 속한다. 교황은 면죄부를 ‘십자가의 대체품’으로 변경할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십자가를 대신하지 못한다. 대신하는 그 순간, 십자가의 구원은 상실되므로.
우리는 루터의 성경해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루터는 성경에 없는 것을 새롭게 꺼내서 그 시대에 적용했다. 면죄부는 ‘율법’에 없었으나, 그것을 ‘율법적 속성’으로 재발견한 것은 루터다. 이 시대는 과연 어떠한가? 면죄부의 새로운 변형이 어디에 나타났을까? 교회속에 각종 면죄부가 새로운 형상과 모양으로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조심하자. 그것을 취하면, 십자가의 구원이 상실될 수 있다. 교황의 말을 들었던 그 시대 백성들도 영혼이 멸망으로 기울었는데, 하물며 이 시대랴!!
루터가 면죄부를 ‘율법적 행위’로 해석한 것은 어떤 성경해석법일까? 갈라디아서에 나온 ‘단어’와 ‘문장’과 ‘문맥’과 ‘편지 전체’와 작가 바울까지 고려한 성경해석이다. 편지 자체로만 본다면, 율법은 곧 ‘유대인의 할례’를 말하지만, 루터는 바울의 편지에 ‘성령의 숨결’을 불어 넣어서, 그 시대에 맞게 생명력있는 성경해석을 한 것이다. 바울이 만약, 루터 시대에 살아난다면, 루터처럼 해석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루터의 성경해석은 이 시대에도 새롭게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한다. 기준원칙은 ‘십자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