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평화를 위해 이 땅에 오셨을까? 그러하면, 그 평화는 어떤 평화인가? 남북평화 담론이 주장되는 요즘, 예수님의 평화는 과연 어떠한지, 성경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곳곳에서 예수님은 ‘평화’ 보다는 ‘전쟁’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전쟁’은 어떤 전쟁일까?
먼저,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은 2부류다. 구약과 신약이다. 구약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완성됐고, 구약의 예언을 이루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행하심을 기록한 책이 신약성경이다. 신약성경은 AD50~70년 사이에 사도들에 의해 씌였다. 4복음서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다. 복음서를 통해 나타난 예수님은 ‘혁명의 전사’다.
1) 동방박사 사건
헤롯왕은 로마의 1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의 인정을 받은 유대땅 유일한 왕이다. 마치, 이성계가 명나라에서 왕권을 인정받듯, 헤롯왕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왕권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동방박사가 헤롯왕의 면전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거론한다. 왕앞에서 ‘다른 왕’을 예언하며, 추앙받은 예수님이다. 그리고, 베들레헴 근처의 유아 대학살 사건이 있었고, 세례요한도 그때 죽을 뻔했다. 예수님은 미리 피신했다. 예수님이 태어나면서, 전쟁의 뇌관이 터진 듯 하다.
2) 말구유 탄생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탄생은 그 시대 왕족을 부정하는 대표적 사건이다. 모세는 태어나 바구니에 실려, 왕궁으로 입양되었다. 예수님은 그런 것도 없다. 다윗의 동네, 허름한 서민의 집에서 말구유에 뉘어 태어났다. 갑작스런 인구 조사령 때문에, 명절 때 고향이 붐비듯, 머물 숙소가 없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하나님의 아들은 말구유에 눕혔다.
3) 안식일 폐지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면서 “죄사함”을 선포하고, 안식일날 자주 그렇게 했다. 안식일에는 병을 고칠 수 없도록 그 시대 율법이 정해놓았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병을 고친 것은 그 시대 종교법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마치, 가이사가 루비콘강을 건넌 것과 같다.
4) 마태와 삭개오 전도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 마태가 전도됐고, 마지막 사역에 여리고성 세리장 삭개오가 전도됐다. 두 사건은 의미심장하다. 세리는 친로마 앞잡이다. 민족의 반역자들에게 예수님은 “구원”을 선물했다. 삭개오 집에 들어가면서, 청중들이 보는 앞에서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신다.
5) 성전멸망
예수님은 성전정결운동을 하신 후, 감람산에서 “성전멸망”을 예언하셨다. 헤롯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인데, 예수님은 그 성전을 부정했다. 어떤 성경학자는 “예수님의 육신이 죽었기 때문에, 헤롯성전도 멸망했다”라고 해석하는데, 아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헤롯 성전은 멸망했다. 예수님의 육신은 죽임을 당했으나 부활했고, 헤롯성전은 영원히 멸망했다. 성전체제를 부정하고, 사람성전이 새롭게 펼쳐진 것이다. 그 시대 종교를 향한 혁명이었다.
1~5가지 사건만 보더라도, 예수님의 평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기존 질서를 유지하면서, 전쟁이 없는 그런 평화는 세상의 희망사항이고, 예수님의 평화는 그것과 다르다. 정치권력이든, 종교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하나님의 거룩함이 없다면, 결국 부패할 뿐이다. 예수님은 식민 지배를 받은 약소국가에서 사회적 취약층인 서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목회사역을 할 때, 성전도 없었고,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처럼, 마땅한 거처도 없었다. 장모님 댁에 살던 베드로의 집에 잠시 머물다가, 제자들의 집을 유랑객처럼 떠돌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다. 그 예수님이 이 시대에 오신다면, 과연 어떻게 행하실까?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이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