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가 스스로 동굴에 갇혔다. 숨었다.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한 엘리야가 낙심의 동굴, 죽음의 동굴, 의심의 동굴에 갇혔다. 호렙산까지 내려갔으니, 광야길에서 절벽 끝에 선 것이다. 그때, 동굴속에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열왕기상 19:11)
이때, 엘리야는 동굴을 나가지 않았다. 왜 나가지 않았을까? 강풍과 지진과 불이 지나가도 엘리야는 나가지 않았다. 불이 지나고, 세미한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엘리야는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동굴 어귀에 섰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열왕기상 19:13)
세미한 소리의 내용은 무엇일까? 어떤 소리를 듣고서, 엘리야는 동굴을 나갔을까? ‘지금 나오라’는 소리였을까? ‘동굴 어귀에 서라’는 소리였을까? ‘엘리야야’라고 부르는 소리였을까? ‘내용이 없는 미세한 소리’였을까? ‘엘리야만 알아듣는 어떤 소리’였을까?
동굴안에서 소리와 동굴밖에서 소리는 달라진다. 동굴안에서 소리는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나오라”로 끝났다. 반면, 동굴밖에서 소리는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들에게 기름을 붓고, 후계자로 엘리사를 세우라.”였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왔던 세례요한도 헤롯 안티파스의 불륜과 권력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그 시대와 맞서 싸웠다. 감옥에 갇혀서 ‘낙심의 동굴’에 갇혔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으냐”는 구약의 질문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로 변경된다. 그때 예수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태복음 11:4~6)
강풍과 지진과 불은 세상을 심판하는 자연재앙이고, 세미한 소리는 엘리야를 살리고 구원하는 소리였다. 주님의 음성은 신음하는 영혼을 살린다. 촛불혁명의 불길이 치솟아도, 결국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촛불의 민심’이 아니다. 신음소리를 듣고 복음을 전하는 사랑의 기도로 죽은 영혼이 살아난다. 복음은 죽은 심령을 일으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