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은 ‘언어’로 기록되었다. 언어는 뜻이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성경말씀은 뜻이 제한적인가, 자유한가. 성경말씀은 각자에게 성령으로 영감되어 깨달음을 줄 때, 상반된 내용을 깨닫게 하실까? 우리는 이 부분을 매우 심도있게 고민해야한다. 나는 30년간 성령은 같은 성경을 다르게 계시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성령은 같은 성경을 같은 깨달음으로 인도한다. 단지, 사람이 잘못 알아들을 뿐이다.
이단종교는 종종 “비밀”과 “계시”라는 의미로 성경을 새롭게 해석한다. 오!! 그들의 탁월한 지식에 감탄사가 나온다. 그러나, 성경원문과 다르게 해석한 그들의 논증은 바벨탑일 뿐이다. 그러한 성경해석들은 진리를 위한 ‘조각들’이다. 기존 성경해석과 다를 때, 조심스럽게 검증해야한다. 이것이 성경을 읽는 독자의 첫째 책무다.
[마태복음 16:6~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중략)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예수님께서 간단한 문장을 말했다.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이다. 마가복음에서는 강하게 표현된다.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이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했지만, 마태복음의 뜻은 명확하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이다. 그처럼, 마가복음의 뜻도 동일하다. 모든 성경말씀은 본문이 ‘하나의 뜻’을 의미하지, 정반대의 뜻을 의미할 수는 없다. 정반대로 해석될 경우, 하나는 옳고, 다른 하나는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이다.
창세기 2장과 3장으로 가보자. 성경해석을 논할 때는 창세기 2장과 3장을 반드시 숙지해야한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놓고 “따먹지 말라”고 해석했고, 뱀은 “따먹어도 좋은 것”으로 해석했다. 하와와 아담은 뱀의 말을 듣고, 그것을 따먹고, 하나님과 멀어졌다. 우리는 누구의 해석을 따라야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선악과가 무엇인지 비유로 감춰졌으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뱀의 해석이 정반대라는 것이다. 정반대로 나뉘면,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뱀의 말이다. 우리는 분별해야한다.
이단들은 ‘십자가’를 거꾸로 해석한다. 예수님과 정반대로 해석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했다. 십자가와 관련해서는 수차례 칼럼으로 적은 바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을 말하자, 베드로는 반대했다. 그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다. 바로, 선악과 사건을 말한 것이다. 십자가는 뱀을 잡는 하나님의 특급 작전이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대속’(代贖)의 선물인데, 죄의 빚을 갚으면, 뱀이 더 이상 인간을 붙잡지 못하니, 베드로를 통해서 십자가를 막은 것이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데, 예수님과 다른 성경해석을 하면, 구원이 어찌 이루어지겠는가. 십자가를 믿어야, 죄사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