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신학은 ‘겟세마네 동산의 갈등’이 없다. 즉, 십자가 사건을 ‘하나님의 절대적 뜻’으로 풀이한다. 공관복음은 “선택과 갈등”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선택하여 순종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제자들은 “무능해서” 도망치는 비겁자로 풀이된다. 요한신학은 처음부터 “십자가는 뜻이다”로 해석하며, 산헤드린 의회에서 “예수님 살해 작전”을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해석한다. 철저히 하나님의 관점, 성령의 관점이다.
요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세례(요단강)와 피세례(예루살렘)인데,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돌항아리에 물로 포도주를 만든 표적이 ‘출발점’이다. 1장에서 유대인들이 보낸 대표단이 세례요한에게 질문을 했는데, 다음날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증거했다. 물세례와 피세례가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희생양은 성전의 제물을 뜻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로 인류역사속에서 증명됐다. 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교황청은 건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사건은 ‘미스터리’에 남는다. 지금 시대도 그러한데, 사도 요한이 살던 시기는 어떠했겠는가. 십자가 사건을 놓고, “뜻인가, 아닌가”의 의혹이 분분했다. 요한신학은 그러한 의심에 “대못”을 박았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작전이며, 하나님의 구원작품이다”라고. 그것이 돌항아리 포도주 표적이다.
니고데모가 밤에 몰래 왔다. 가나혼인잔치 연회장(宴會長)처럼 포도주 맛을 알면서도, 어디서 난 것인지를 전혀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의 존재”를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때 갑자기 ‘책갈피’처럼 끼어든 것이 ‘십자가 사건’이다. 가나의 혼인잔치와 연결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여섯 개의 돌항아리처럼 창조사역의 6일째를 완성하는 예수님의 구원사역이 펼쳐진 것인데, 단지 ‘포도주’처럼 표적만 보는 니고데모였다. 성전정결운동에서도 ‘성전된 육체’라고 분명히 표기한다.
성전정결운동을 마치고, 예수님은 갈릴리로 복귀하지 않고, 요단강에서 잠시 물세례 운동을 펼치셨다. 사도 요한은 그 사건을 첨부했다. 그때,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요3:25)라는 문장이 들어간다. 가나의 혼인잔치와 연결된 문장이다.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요2:6)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더 좋은 포도주”가 나오듯, 예수님의 물세례 운동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증거한다. 세례요한은 “신랑을 증거하는 친구”로서 연회장(宴會長)의 역할이다. 요단강의 물세례에서 연회장은 세례요한이고, 피세례의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연회장은 니고데모임을 알 수 있다. 신랑은 예수님이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듯, 니고데모도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단독 회담’을 한 것이다.
세례요한은 헤롯 안티파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공관복음에 나온다. 예수님 시대에 그 사건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다. “만약 세례요한이 죽지 않았다면….. 세례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폈더라면…..”의 인간적 상상력이 펼쳐졌을 것이다. 이 시대에도 그러한 질문이 이미 이단을 통해 공론화됐다.
요한복음은 세례요한의 사역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시대가운데 증거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즉, “대속적 그리스도”로서 ‘희생양’이다. 세례요한의 죽음은 ‘어린양’의 ‘예표’였다. 물이 포도주가 되듯, 물세례는 포도주 세례(피세례)로 완성된다. 2장의 가나 혼인잔치는 3장의 니고데모와 세례요한으로 현실화된다. (세례요한은 십자가 사건을 준비했고,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장례위장으로 십자가 사건을 수습했다.)
노아의 홍수심판은 포도원 경작으로 완성된다. 그처럼, 요단강의 물세례는 홍수심판의 상징이며, 십자가의 피세례는 포도원 구원 경작의 결실이다. 물세례와 피세례는 하나님의 완벽한 구원작품임을 반드시 믿어야한다. 피세례의 십자가가 없다면, 성령의 임재도 없다. 왜냐면, 인간은 죄인이어서 그렇다. 돌항아리 스스로 어찌 포도주를 만들겠는가. 예수님이 물을 채우듯, 물세례를 받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해야, 우리는 거듭날 수 있다.
“성전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요2:14~16)
‘심령의 성전’속에 무엇이 있는지, 깊게 들여다봄으로, 성령의 대청소를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