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에서 눈(目)의 진흙을 씻어낸 맹인이 눈을 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시고, 예수님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니, 맹인이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다. 예수님은 이 땅의 창조주다. 요한은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눈을 뜬 맹인은 이름도 없다. 실로암(보냄을 받다)처럼, 맹인은 고침을 받은 이유 때문에 바리새인들에게 ‘보냄’을 받는다. 여기저기 검찰조사를 받듯 추궁을 받는데, 그러한 과정으로 맹인은 “예수의 제자”로 낙인찍혔다. 이것이 축복이다. 이 날이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에 맹인이 눈을 뜬 그 사건이 바리새파를 “둘”로 갈랐다. 안식일을 범했으니, 예수님은 ‘죄인’이다. 맹인이 눈을 떴으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지자다. 여기서 “안식일”은 우리가 정해놓은 철칙이며, 부적이며, 따먹지 못하게 금지된 선악과이며, 정체성이다. 만약에, 자신의 병이 원수를 통해서 고침을 받았다면, 어찌 해야할까? 나아만 장군이 그러했다. 보잘 것 없는 약소국의 시골 목사가 뱉은 몇마디 말을 듣고 행했더니, 병이 나았다. 실로암 맹인도 예수님이 뱉은 침과 흙으로 만든 진흙반죽을 실로암에서 씻으니 눈이 떠졌다.
모욕의 침세례를 받았던지,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이 임했던지, 분별할 수 없는 혼돈의 갈림길에 놓였던지, 우리가 볼 수 없는 ‘순간적 맹인’이 되었다면, 실로암을 말씀하신 예수님께 가서 눈물로 죄를 씻자. 사도 바울도 갑자기 눈이 멀고서, 선지자 아나니아에게 가서 기도를 받고 눈뜸의 고침을 얻었다. 예수님 없이도 사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다고 외치는 자들은 볼 수 있으니, 그것이 ‘맹인’됨을 자랑할 뿐이다. 볼 수 없는 맹인은 빛이신 주님께 나아가서 ‘빛’의 은혜를 받고, 볼 수 있는 지혜자는 빛이신 주님을 거부함으로 ‘영적 소경’으로 살아간다. 여기서 ‘빛’은 하나님의 임재를 땅에서 깨닫는 것이다.
모세는 이집트에 들어가서 그 백성을 꺼내서 탈출시켰다.
제2의 모세인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 땅에서 행하셨다.
예수님은 그 백성을 꺼내셨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위에서 아래로 가져와서, 그 백성에게 주심으로 꺼내셨다. 이것이 성육신(成肉身)이며, 지상천국이다. 하나님이 땅의 창조주 예수님으로 내려오셨고, 그처럼 이 땅에 육신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오늘도 내려오신다. 주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그 사람에게 임하므로, ‘생명의 부활’이 지금부터 실현된다. 매월 월세를 내야하는 2층 세입자 처녀가 건물주 아들과 결혼하면, 건물의 상속자가 된다. 3층에 살던 건물주 아들이 2층으로 내려오듯, 성육신은 하나님의 아들과 우리가 ‘결혼의 관계맺음’과 같다. 천국은 주님을 진실로 믿는 자의 발끝에서 오늘도 실현된다. 이것이 실로암 표적이다.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마17:25)
주님을 믿는 자마다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므로, 성전세의 월세를 면제받는다.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영원한 땅의 창조주”로서 심판과 축복의 권세로 인생들을 다스리신다. 그것을 믿는 자마다 ‘실로암의 축복’, ‘빛의 은혜’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