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은 표적(標的)을 향한다. 요한복음의 모든 표적(表迹)은 화살과 같아서, 오직 1가지 표적(標的)을 향한다. 그곳은 십자가 사건이다. 누구든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섞어서, “십자가는 뜻이 아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요한복음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을 직접 보고, 부활승천후 초대교회를 살아낸 그 시대 마지막 증인인 요한의 증언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요, 증인의 말을 믿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자이다. 우리는 반드시 요한복음의 핵심 주제를 믿어야한다.
요한복음은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정의한다. 여기에는 어떤 신학적 이론이 필요없다. 성경말씀은 미적분이 아니고, ‘글’로 작성된 기록문서다. 기록은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누구든지, 편견을 벗고, 요한복음을 읽으면, “십자가의 구속”이 그 시대 제자 공동체와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죄사함을 위한 것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요한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고 그 장소를 분명히 거론한다. 이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말씀하기 위해서다. ‘살아난 나사로의 표적’은 화살과 같아서 예수님의 무덤속 부활을 향한다.
향유옥합 사건에 대해서 주님은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고 말씀했다. 향유를 붓고, 남은 향유는 장례를 위해 남겨졌다. 그 향유는 분명 니고데모가 준비한 몰약과 향유와 함께 부어졌을 것이다.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나사로가 있었던 그 무덤속으로 결국, 들어가셨다.
피가 멈추지 않는 혈루증 여인의 피가 멈추고, 주님이 결국, 피가 흘리셨다. 거라사인 군대귀신 들린 자의 족쇄를 풀어준 주님은 로마군대의 족쇄에 묶이셨다. 누워있던 베드로의 장모 열병을 고치신 주님은 결국, 무덤속에 누우셨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주님이 눈을 감으셨다. 목마른 주님은 믿는 자에게 음료수가 되시고, 허기진 주님은 믿는 자에게 생명의 떡이 되시고, 피곤에 지쳐 쓰러진 주님은 우리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신다.
나는 30년의 긴 세월, ‘빛’을 ‘어둠’으로, ‘생명’을 ‘죽음’으로, ‘십자가’를 ‘저주’로, ‘죄’를 ‘의’로, 변환해서 종교생활을 했었다. 이 시대 가장 바리새파적인 율법중심의 이단종교였다. 공적을 세우고, 행함이 의로운 그곳은 “율법지상천국”의 표본이다. 요한복음 12장 43장에 나온 말씀으로 볼 때, 그곳은 사람의 영광인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관리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요 12:43)
빛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