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혹은 가지손질하기
옛날엔 성경을 읽다가 어떤 영감이 오면, 그것을 기점으로 글을 썼다. 요즘은 성경을 읽다가, 어떤 영감이 오면, 연결된 신앙서적을 찾아서 함께 참고해서 글을 쓴다. 여기서 “영감”은 성경구절에 대한 내 관심이다. ‘관심(關心)’이 성령의 미세한 소리일 때도 있다.
한글성경은 번역문학이다. 개역한글은 “한문성경”을 번역했다. 그래서, 원문성경과 뜻이 엉뚱한 것들이 많다. 반면 개역개정은 “헬라어 원문성경”을 번역했다. 개역개정이 보다 정확하다. 개역한글은 3번 번역된 성경인 것이다. 헬라어 성경-영어성경-한문성경-개역한글로 번역되었다. (개역한글은 한문성경을 번역해서, 운율감이 있고, 읽는 리듬감이 있다. 나는 개역개정을 본다.)
고향이 시골이어서, 어린 시절 하우스에서 아버지 일을 자주 도왔다. 겨울에 하우스를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나, 여름에 하우스를 하는 일은 “땀”을 흘리는 중노동이다. 농촌은 여름에도 하우스 재배를 한다. 오이를 재배할 때, 가지를 들어올려준다. 가지가 바닥에 내려 있으면, 아버지는 그것을 살짝 들어서, 위에 설치된 줄에 끈으로 매달아준다. 그러면, 가지는 열매를 연다. 신비한 일이다. 땅에서 떨어짐이 곧 가지의 휴거다.
오늘은 요한복음 15장을 읽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요15:1~2) 해당 구절은 사람을 불편케 한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제거된다. 꼭, 13장 가룟유다를 연상시킨다. 가룟 유다는 열매를 맺지 못해서, 제거된 가지인가? 남은 11명은 무슨 열매를 맺었을까?
신앙사역을 전문으로 하신 선배와 선조들의 열정은 ‘좋은 열매’가 되어서, 기록의 유산이 남겨졌다. 책은 곧 열매다. 열린다 성경(류모세) 절기 이야기, 챕터 9 (유월절 만찬과 참 포도나무) 내용을 읽었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 그 책을 다시 꺼내서 읽고 있다. 류모세 작가는 “제거하다”는 의미를 ‘번역의 오류’로 지적했다.
(p116) 왜 영어성경과 우리말 성경은 이 부분에서 오역(誤譯)을 한 것일까? 이는 ‘제거해 버리다’에 해당되는 헬라어 원어 속에 그 해답이 있다. 헬라어 ‘아이로’는 ‘제거해버리다’와 ‘들엊다’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중략) 번역상의 오류가 말씀을 전혀 다른 의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데 있다. 땅바닥에 닿아 과실을 맺지 못하 가지를 ‘제거해 버린다’고 해석하면, 무시무시한 심판으로 이해되지만, ‘들어 주신다’고 해석하면, 연약한 우리들을 위로해 주시는 놀라운 권면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포도나무의 가지들이다. 때로 과실을 맺지 못할 수도 있고, 잘 맺을 수도 있지만, 상황과 결과에 따라 그렇게 요동하지 않아도 된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는 들어 주시고, 잘 맺는 가지는 잔가지를 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상급의 포도 열매를 맺도록 부지런히 일하시기 때문이다.
오!! 얼마나 아름다운 인식의 가지손질인가? ‘가지 제거’의 두려움이 사랑으로 변화되는 순간이었다. 물이 포도주가 되듯, 번역의 오류가 바로 잡히니, 신앙의 방향도 새롭게 설정된다. 열매를 맺게 하심도 포도나무와 농부의 행함이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야한다. 주님께 붙어야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주님께 붙지 않았는데, 세상의 부귀영화가 주렁주렁 열렸다면, 그것이 버려짐의 증거일 것이다. 주님께 붙어 있으면, 십자가의 열매가 열린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은 “열매”를 “사랑”으로 비유하면서, 최상급 열매는 곧 “목숨을 버리는 십자가”라고 말씀한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자기희생이 전제된다. 농부는 포도나무를 위해, 포도나무는 가지를 위해, 진액과 정성을 희생해서 전달하므로, 가지는 열매를 맺는다.
모든 이단들의 첫 시작점은 “포도나무”였다. 예수님께 딱 붙어서 열매를 맺는 가지였다. 점점점 가지가 굵어지면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니, 가지가 스스로 나무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예수님과 결별”을 선언한다. 그것이 스스로 “구원주”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구원주가 되면, 참포나무와 결별한다. 가지는 스스로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요한복음 15장은 “붙어있기”를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4~5)
주님께 붙어있는가? 참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인가? 그것을 반드시 확인하고, 점검해야한다. 참포도나무에 붙지 못했다면, 성령으로 태어나길 간구하자. 참포도나무의 새로운 가지가 되도록, 농부이신 창조주가 이루시리라.
*** 열린다 성경(절기 이야기)에 따르면, 예수님 시절 포도나무 재배법은 ‘덩굴 재배법’으로, 수박처럼 키웠다고 한다. 포도덩굴에 ‘돌’을 굄돌로 넣어서, 들어 올리면 그때 포도가 열리는 방법이다. 포도나무가 위로 올라가는 재배법은 예수님 시대에 개발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