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주보를 매주 출판한다. 주보(週報)는 일주일의 알림사항이다. 주간지(週刊誌)와 같은 뜻이다. 내게 주보는 신앙의 견고한 뿌리다. 주일이 되면, 나는 주보가 기다려진다. 그곳에 무엇이 담겨있을까? 그곳에 무엇을 담을까? 1년은 52주, 52개 주보가 모이면, 1년의 교회역사가 건축된다.
가끔 마음이 혼잡하면, 나는 주보를 펼치는 행위를 한다. 내 주보는 기존 주보와 많이 다르다. 주보가 내게 오면 ‘나의 주보’로 다시 태어난다. 주보의 앞장은 내가 기록한다. 모든 주보는 앞장이 빈 공간이다. 교회 이름과 고정된 틀로 되어 있다. 나는 그곳에 큼지막하게, 주일설교 제목을 기록하고, 날짜도 아주 크게 기록한다. 일주일동안 주보는 내 책상위에 올려져서, 중요한 사건들이 담겨진다. 주보는 나의 일상과 교회가 만나는 접점이다.
주보가 8장이면, 2달이다. 8장을 펼치면, 신문 1면을 펼치듯이 큼지막한 헤드라인 제목이 눈에 들어오면서, 내가 2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인생은 사막같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할 때, 걸어왔던 길을 돌아봐야한다. 그때마다 나는 주보를 통해 흔적을 확인한다. 첫 장에 기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취재노트, 설교 기록노트는 버려도, 주보는 버리지 않는다. 취재노트는 칼럼과 기사를 쓰기 위한 사초(史草)요, 설교 기록노트도 설교모음집을 만들기 위한 임시 자료다. 설교집이 완성되면, 나는 설교 기록노트를 구석으로 밀어넣는다. 언젠가 버려질 것이다. 목적이 완성되면, 수단은 폐기된다. 이런 측면에서 주보는 독특하고, 특별하다.
주보는 매주 많이 발행된다. 그 중에서 내가 손에 잡은 “내 주보”가 나는 좋다. 교회에 도착하면, 날짜를 맨 앞장에 크게 기록하고, 찬송가도 확인하고, 뭔가 새롭게 올라온 소식이 있는지 꼼꼼이 살펴본다. 성경본문, 성경봉독자, 대표기도자, 헌금위원, 식사봉사자, 설거지 담당자 등등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은혜다. 십일조 명단에 내 이름이 있으면, 동그라미를 친다. 꼭 숨은그림 찾기같다.
주보의 백미는 안쪽면 우측 3면에 있다. 그곳에는 지난주 설교의 압축이 실려있다. 깊게 탐독하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은 밑줄을 긋고,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영감이 스치면, 빈 공간에 기록으로 남긴다. 이렇게 주보를 편집해서 수정보완하고, ‘나의 주보’로 만들면, 주보는 신앙의 역사가 된다. 자녀의 신앙교육은 주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매주 꾸준히 발간되는 주보를 ‘자신의 주보’로 만드는 법만 익힌다면, 자녀는 주보를 읽으면서, 신앙의 뿌리가 서서히 자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보가 좋다.
생각해 보라!! 14살 자녀가 매주 주보를 ‘자기의 주보’로 만들어서, 주보 앞면에 설교제목과 날짜를 기록하고, 교회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과 일주일의 중요사건을 기록하면서, 10년동안 ‘52장 주보’ ‘10묶음’을 모았다고 하자. 그것은 부피로 작은 공간을 차지할 뿐이다. 520장의 주보묶음은 자녀의 역사요, 신앙의 뿌리깊은 나무가 될 것이다. 신앙의 유산을 주보를 통해 물려주는 지혜가 있기를 바란다. (연말에는 역순으로 모아진 주보를 날짜 순서로 재배열해서 모으면 좋다. 1년을 마치는 자신의 감상을 적어서 맨 위에 놀려놓으면, 1년의 자서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