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啓示)는 열어서 보여주는 것이다. 눈이 열리면, 그때 모든 것을 깨닫는다. 묵시(默示)는 침묵속에 보여주는 것, 침묵했던 비밀이 드러나는 것이다. 계시록은 “깨달음”이 핵심이다. 인류역사가 계시록에 따라 진행됐다는 그런 허무맹랑한 계시록 풀이는 “거짓말”이다. 문장과 문장들을 각각 역사적 사건에 따라 끼워 맞춰서 해석하는 것인데, 계시록의 본래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또한, 계시록은 정감록도 아니고, 다니엘서도 아니다. 영화로운 여왕 바벨론이 죄악의 소굴이며, ‘사치의 음녀’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계시다. 의인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최고의 묵시’다. 2가지 묵시는 인자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계시록 18장은 “바벨론”에 대한 예언이다. 어떤 천사가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지부하였도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바벨론은 ‘로마’의 은어다. 로마제국은 실제로 헤롯성전을 멸망시키고, 로마본토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리면서, 로마제국안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를 모두 핍박했다. 바벨론 포로시대처럼 로마제국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핍박했다. 어떤 천사는 “힘찬 음성으로” 예언을 한 것이며, 이것을 읽는 독자는 그 음성을 들음으로, 같은 예언의 말씀에 동참하게 된다.
이때, 18:4이 매우 중요하다. 사도 요한이 힘찬 음성의 말이 울려 퍼질 때, 전혀 다른 음성을 듣게 된다. 과연, 우리는 이 음성을 듣고 있는가? 듣지 못하면, 바벨론속에 매몰되어, 함께 침몰한다. 이 음성을 들어야, 소돔과 고모라 성을 빠져나오는 롯처럼 구원을 받게 된다. 사도 요한은 분명히 들었다. 그 음성은 힘차고 우렁찬 음성이 아닐 확률이 높다. 음성의 볼륨은 없다.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주라” (계 18:4~7)
그리고, 4명의 독백이 나온다.
1) 음녀 바벨론
2) 땅의 왕들
3) 상인들
4) 선장과 선원들
음녀 바벨론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한다.
반면, 땅의 왕들과 상인들과 선장과 선원들은 음녀 바벨론을 떠남으로, 바벨론의 멸망을 멀리서 바라보며, ‘힘찬 음성으로 말한 천사처럼’ 독백으로 말한다. 이들은 롯처럼 구출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속한다. 바벨론의 멸망을 깨닫지 못하면, 바벨론의 영광을 위해서 평생 살다가 죽을 것이요, 바벨론의 영화가 하나님께 ‘사무치는 죄’인 것을 깨닫게 되면, 그곳을 떠날 것이다.
그러므로, ‘작은 바벨론’,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아야한다.
18:21 큰 맷돌의 투척 사건은 바벨론의 결국이다. 이 예언은 19:21에서 두 짐승이 잡혀 산채로 유황불 붙은 못에 던져지면서, 마무리된다. 짐승의 권력은 종착역이 ‘불못’이다. 정치권력도 종교권력도 구원을 주지 못한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피흘림으로 가능하다. 19장 13절에 보면,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다”고 했다. 예수님이다. 작은 바벨론에서 구출받은 땅의 왕들과 상인들과 선장과 선원들은 모두 ‘주님의 피흘림’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피값을 지불한 생명구원이다. 꺼냄을 받지 못한 자들은 19:19에서 말하는 마지막 최후 전쟁에 참여할 것이다. 권력의 부품으로 사용되는 인생은 그 미래가 없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발악하는 자들은 ‘불못’이 예정된다. 나는, 우리는, 어떠한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계시록 18:4)
구원받고, 꺼냄을 받은 땅의 왕들과 상인들과 선장과 선원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사도 요한이 들은 그 음성을 들었을까? 외치는 자가 없다면,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다. 아브라함처럼 중보기도하는 자가 없다면, 하나님의 손길이 어찌 나타나겠는가. 선장과 선원들의 독백에 보면, 19:20에서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였음이라”고 했는데, 바로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복음전파가 ‘구원의 밧줄’로 사용된 것이다.
계시록은 바벨론(로마)의 권력이 멸망할 것을 예언했고, 실제로 로마제국은 사라졌다. 그러나, 짐승의 권력은 지금도 존재한다.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은 ‘바벨론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압제하고, 군림하는 그러한 영화(榮華)는 하나님께 ‘사무치는 죄’를 짓는 것임을 정녕 알아야한다. 여왕 바벨론은 자신을 위하여 영화롭게 했는데, 그것이 멸망받을 죄였다.
1) 힘찬 음성 (18:2)
2) 요한이 들은 다른 음성 (18:4)
3) 음녀 바벨론의 독백 (18:7)
4) 회개하는 땅의 왕들 (18:9)
5) 애통하는 상인들 (19:15)
6) 선장과 선객들과 선원들 (19:17)
땅의 왕들과 애통하는 상인들과 선장과 선객들과 선원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불타는 연기’를 멀리서 목격한다.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멀리서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이미지를 가져온 것 같다.
(창세기 19: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