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월 18일, 요한복음 18장과 계시록 18장과 창세기 48장을 읽는 날이다. 예수님은 18:11에서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했다. 칼은 칼집에 들어있고, 호신용으로 사용할 뿐, 공격용 무기는 아니다. 계시록에서 주님은 이기고 이겼는데, ‘피옷’을 입고 계셨다. 그 피는 ‘십자가의 피흘림’이다. 적의 칼에 찔리면서, 제자의 배신에 당하면서, 그들을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이다. 사랑하는 자는 무기가 없다. 무기는 칼집에 넣어야한다. 짐승의 권력을 ‘칼’로 싸우고, 인자의 권력은 ‘진리의 칼’로 싸운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의 집으로 끌려간 주님은 “심문”을 받았다. 묵비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적극적인 방어권도 사용하지 않았다. 19~24절을 보면, 주님은 진술과 변론을 하셨는데, 핵심은 “제자들의 증언”을 말하고 있다.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요18:21)
그런데, 베드로는 계집종의 질문에서 침묵했다. 나아가 “모른다”고 부인했다. 진리의 칼을 칼집에 넣은 것이다. 꺼내야할 ‘말의 칼’은 넣고, 꺼내지 말아야할 ‘전쟁의 칼’을 꺼내 말고의 귀를 자른 베드로였다. 진리의 칼, 말씀의 칼, 희생의 칼, 증거의 칼은 꺼내야한다. 다행히, 예수님의 부활로 다시 살아난 제자 공동체는 주님을 위해 ‘증거의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사도행전이다. 증거하지 않으면, 영적 바벨론은 무너지지 않는다. 증거의 순례를 하면, 그것을 발판으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무너뜨린다. 바벨론이 니느웨처럼 서서히 변화됨으로 무너진다.
18장에서 안나스의 심문, 빌라도의 심문이 각각 나온다. 빌라도의 심문에서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됨”을 시인하셨다. 그것과 관련해, 빌라도는 “무죄”를 판결한다. 무죄로 판결됐고, 명절 특사로 1명을 내보내로 빌라도가 제안하자, 유대교 지도부와 백성들은 갑자기 ‘바라바’를 요구한다. 그는 민족주의자로서 독립운동가다. 죄없는 주님이 죄인된 바라바를 위해서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 사건이 바로 ‘이신칭의’의 근거가 된다. 주님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고 자신있게 진술하셨다. 말씀을 들은 성도는 이제 “말할 책무”가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