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마치고, 분당선을 타고 집에 오는데, 강남구청역 근처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뭐라고!! 이 여자가!! 다시 말해봐!!”라고 소리를 질렀다. 40대 중반의 고운 여인은 갑작스런 할아버지의 호통에 화들짝 놀래면서, 방어태세를 취했다. 할아버지가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서 전철역 위치를 물었던 것인데, 그 여자가 뭔가를 잘못 발음했던 것 같다.
여인은 할아버지의 끝없는 불만과 지적과 언어폭탄에 “고소하겠다. 언어폭력이고, 협박이다”고 소리를 질렀다. 지하철은 순식간에 싸움터가 됐다. 할아버지는 “고발”이란 단어에, 격분하면서, 옷깃이라도 스치면, 경찰서로 연행될 위기다. 그때다. 내 눈앞에 “감사하라”는 문장이 스쳤다. 설교시간에 “감사”라는 단어가 100번 넘게 반복되니, 각인됐다. “감사하라”는 말씀에 의지해서, 내가 건너편 그 여인에게 “그냥 참아요, 지나가는 소나기라고 생각하고, 건너편으로 가버려요”라고 눈치했다.
내 말을 알아듣고, 그 여인은 언성을 낮췄다. 그 할아버지는 여인이 언성을 낮추자, 혼자서 흥분을 폭발했다가, 왔다갔다했다. 그러다가, “다시 말해봐!! 나한테, 고발? 고발해봐!!”라고 하니까, 그 여인은 다시 맞장구를 치면서 “미친분이네”라고 말했다. ‘고발’과 ‘미친“이라는 두 단어는 그 할아버지를 ’싸움꾼‘으로 돌변시켰다. 5분동안 벌어진 일이다. 내가 벌떡 일어났다. 그 할아버지와 여인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할아버지가 나한테 호소했다.
“내가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어?”
할아버지는 술냄새가 가득했다. 나는 그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미친 놈은 저예요, 저!! 나는 요즘 미치겠어요.”
그리고, 내가 “활짝” 웃었다. 미친 웃음이다. 그 할아버지는 내게
“자네는 안 미쳤어. 그러지말고, 저 여인한테 따져야겠어!!”
그 할아버지는 내려야할 정거장까지 놓치면서, 여인과 말싸움에 휘말렸고, 여인도 마찬가지다. 문이 열렸고, 배웅을 해드렸다.
“사는 것이 다 그래요. 그래도 살아가야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때까지 살아봐요. 미친 저도 사는데, 할아버지는 대단해요”
그 할아버지는 여인과 나를 번갈아 보다가, 내렸다.
내리자, 지하철은 조용해졌다. 그 여인은 벌떡 일어나서, 내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옆의 사람들도 같은 말을 했다.
“큰 싸움 일어났는데, 저 양반이 자기가 미쳤다고 하니까, 싸움이 멈췄어. 큰 싸움이 날 뻔했어”
“그 할아버지가 술을 조금 하셨던 것 같아요. 사는게 다들 퍽퍽하죠”
그리고, 왕십리에서 내렸다. 사는 것이 모두 퍽퍽하다. 누군가는 십자가의 소화기를 들어야한다. 그래야 싸움이 멈추는 것 같다. 소나기 피하듯 말싸움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