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는 주님의 핵무기다.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없나이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일곱 제자는 어떤 소리를 듣고, 그렇게 했더니,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 주님의 말씀인줄도 몰랐다. 엠마오 제자들처럼 그러했다. 이후, 사도 요한은 주님을 발견했고, 베드로도 주님께 달려갔다. 배 오른편은 어디인가? 누가복음 5장에서는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했다. 깊은 곳과 오른편이다.
일곱 제자의 인생은 당시 “충분히” 깊은 곳에 있었다. 스승을 잃었고, 혁명은 실패했고, 부활의 주님을 만났으나 다시 사라지셨고, 막달라 마리아처럼 신령하지 못했던 일곱 제자는 갈릴리 호수로 낙향했다. 재주는 그물질이라, 고기를 잡았던 것이다. 깊은 곳에 던져진 그들에게 주님은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다.
그들은 “왼편”에 그물을 던졌을까? 아니다. 상황을 보면, 이제 그물질을 그만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아무 것도 잡히지 않으니, 이제 철수해야겠다고 포기했던 그 순간, 주님이 나타나서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셨다. 마지막 순간에 대박이 터졌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갈릴리 호수도 옥토밭이 된다.
베드로에게 오른편은 어디인가? “내 양을 먹이라”는 목회사역이 ‘오른편’이다. 그것은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다. 일곱 제자는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곳에서 말씀에 의지해서, 산헤드린 의원들의 핍박을 무릎쓰고, 성령충만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행했다.
이후 베드로는 성경말씀속에 자신의 인생을 던졌고, 성령충만과 찬양과 기도와 복음전파의 사역자로 평생을 살았다. 성령강림의 날, 오순절 때 베드로는 요엘서를 인용해서 담대하게, 세계에서 몰려온 모든 사람들에게 “현재적 말세”를 증언했다. 그때가 말세였다. (사도행전 2:16)
AD30년, 십자가 사건이 발생한 그때가 말세였다. 옛 것은 사라지고,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다. 성령을 받은 자마다 새로운 피조물이다. 공관복음이 말한 그 말세가 이 때부터다. 베드로는 AD67~68년 경 네로의 박해를 받고, 십자가에서 순교했다.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십자가에 몸을 던진 것이다. AD70년 헤롯성전은 멸망했다. 40년의 말세기간이 끝났다. 헤롯성전이 멸망했을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인자의 영광을 진실로 경험했을 것이다. 예언이 성취되었으니, 놀라운 일이다.
말세는 연장되는 것이 아니다. ‘사건적 말세’가 계속 일어난다. 시대가 악해서 악의 바벨론이 일어나면, 거짓의 헤롯성전이 들어서면, 미운물건이 생기면서 하나님은 맏아들을 이 세상에 다시 보내심으로(힙1:6) ‘십자가의 형상’으로 빛의 아들들을 빚으신다. 시대마다 상속자를 세우실 때는 ‘십자가의 형상’으로 만드신다. 히브리서를 통해 주님은 그것을 말씀하신다.
어떤 종교단체는 계시록을 억지로 해석하면서, 특정인물의 사명을 예언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거짓말이다. 계시록은 오직 예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만든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을 바꾸는 자마다 ‘화’가 있다. 처음 도입부에 일곱교회가 나오고, 일곱 인을 떼고, 일곱천사가 나팔을 불고, 일곱 심판의 대접을 붓는다. 이것은 일곱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땅에서 ‘기도와 찬양과 선교’를 수행하라는 뜻이다.
교회가 침묵하면, 누가 말씀의 나팔을 불고, 기도와 찬양의 향기를 하나님께 올리겠는가. 성도의 옳은 행실이 마귀를 잡는 총탄이다. 만약, 세상을 향해 분노하면, 분노의 총탄을 성도가 맞은 것이다. 분노는 마귀의 총탄이다. 사랑은 주님의 총, 미움은 마귀의 총이다. 말씀은 주님의 칼, 무력은 마귀의 칼이다. 십자가는 주님의 핵무기다. 계시록은 들어냄으로 ‘영적 분별력’을 알려주는 지혜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