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再臨)은 ‘다시 임한다’는 뜻이고, 초림(初臨)은 처음 임한다는 뜻이다. 계시록에 보면, “내가 속히 오리니”라는 약속이 자주 반복된다. 이 문장 때문에 2천년동안 2천명 이상의 재림주들이 등장했다. 22장 17절에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길”의 문장이 있어서, “내가 성령이다. 내가 신부다”는 거짓 교리가 파생된다. 오시는 분은 주 예수이고, 그는 다윗의 뿌리이며, 광명한 새벽별이고, 알파와 오메가, 생명나무, 시작과 마침이다. 그는 구원의 창시자요, 완성자이다.
22장은 21장 9절에서 이어진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계속 대언을 하고 있다. 대언의 내용은 주 예수의 편지다. 사도 요한이 그 천사를 향해 경배하고 엎드리니, 천사는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한다. 경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요, 주 예수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계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계22:12)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계22:20)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0)
주님은 속히 오신다고 약속했다. “속히 가겠다”가 아니고, “속히 오겠다”고 약속했다. 주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시며, 때가 되면 그 행한대로 약속을 성취하신다. 주님은 신부와 함께 살고 계신 ‘신랑’이다. “속히 오심”은 “이미 오심”을 전제한 표현임을 알아야한다. 공간적으로 이미 오셔서 함께 살고 계시며, 종말의 재림은 점점 다가오는 것이다. 천국보좌를 ‘먼 하늘’로 생각하고, 이 땅에 주님이 오시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주님은 이미 오셨고, 그래서 “속히 온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주 예수의 자리에 앉아서 그 경배를 받는 자들은 ‘우상숭배자’들에 해당된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고 주님은 말씀했다.
창세기 18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으로 나타나, 아브라함을 방문했다. 그때도 같은 표현을 사용하셨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속히 돌아오리니” (창18:10)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창18:14)
“돌아오다”, “오다”는 말은 함께 있을 때 사용하는 단어다.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속히 오심”을 계속 약속하신다. 사라는 1년후 이삭을 얻었다. 그 1년동안 하나님은 사라와 함께 하셨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창21:1~2)
주님은 초림부터 종말의 재림까지 “속히 오리라”는 약속을 통해 우리와 영원히 함께 살고 계신다. “속히 오리라”는 그 약속은 “오심”과 “떠남”에 경계가 무너진 진실한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