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월 28일, 어제 못읽은 계시록 7장을 읽었다. 계시록 6장은 여섯 인(印)을 떼시는 사건이다. 첫째 인을 떼니 백마출현, 둘째 인을 떼니 적토마 출현, 셋째 인을 떼니 흑마 출현, 넷째 인을 떼니 청마 출현, 다섯째 인을 떼니 순교자들의 출현, 여섯째 인을 떼니 해달별의 추락이 나온다. 이제 마지막 인(印)을 남겨뒀는데, 책갈피처럼 장면전환이 일어난다. 계시록 7장은 인(印)치는 역사다. (8장에서 일곱째 인을 떼니, 고요했다.)
7장은 너무, 너무, 너무 중요하다. 7장에서 핵심은 14만4000이 아니다. 핵심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다. 천사가 “해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라고 했다. 이것을 놓고, “동방의 한국에서”라고 해석하는데, 본문 맥락과 너무 동떨어진 해석이다. 타고르가 “한국을 동방의 등불”로 말했다고 하는데, 그것과 계시록이 무슨 상관인가? 여섯째 인(印)을 떼니, 해가 일식(日蝕) 현상처럼 검게 변했다. 태양이 사라진 것이다. 그때 “해가 돋는 곳”에서 “하나님의 인”을 들고 천사가 올라왔다. 즉, ‘하나님의 도장’이 ‘새로운 태양’이라는 의미다. 강조점이 ‘하나님의 도장’이지, ‘동쪽’이 아니다.
또한, 14만4000은 상징적인 숫자이며,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침을 받았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13절~15절까지 장로와 요한의 대화가 나오는데, 장로가 설명하길,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설명한다. 흰옷을 입은 자들이다. 이들은 “어린양의 피”로 옷을 씻어서, 흰옷을 입은 것이다. 흰옷은 ‘피옷’이며, 예수님의 피흘림으로 씻긴 옷이다.
흰 옷을 입은 무리가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외치길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고 찬양한다. 7:14에서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라고 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곧 어린양 예수님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인(印)은 예수님의 인(印)이다. 왜냐면, 어린양이 지금 여섯 개의 인(印)을 뗐고, 마지막 인(印)을 떼기 전에, 하나님의 인(印)으로 도장을 찍고 있다. 결국, 어린양의 도장이 하나님의 도장이며, 어린양이 곧 하나님이다.
어떤 종교단체는 자신들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14만4000’에 해당한다고 풀이한다. 과연 그럴까?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도장’이 있는지, 아닌지, 어찌 아는가? 그것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이다. 종교단체 교리로는 옷을 희게 할 수가 없다. 오직 예수의 피로만 옷을 희게 한다. 비진리가 때론 진리처럼 둔갑한다. 창세기 3장에서도 뱀의 말이 하나님 말씀보다 더 지혜롭게 보였다. 원본말씀의 뿌리를 강하게 붙잡고 성경해석을 해야한다. 근본뿌리는 분명히 “어린양의 피”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진심으로 믿는 모든 성도들은 14만4000에 속한다. 아멘!!
계시록에는 2개의 도장이 등장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도장이며, 다른 하나는 용과 짐승의 도장이다. 용과 짐승은 표(標)를 손과 이마에 받게 한다. 어린양 예수님의 도장이 아니면, 나머지는 용과 짐승의 표(標)다. 예수님의 피흘림으로 오늘도 행위의 옷을 빨래했는가? 돌아봐야한다. 주님은 우리의 참 목자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