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1장은 두 증인의 이야기, 12장은 여자와 용, 13장은 용과 두 짐승 이야기다. 주 앞에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다. “주”는 곧 주 하나님, 주 예수를 뜻한다. 예수님 앞에 두 감람나무는 엘리야와 모세다. 두 촛대는 두 교회를 말하며, 구약교회 유대교와 신약교회를 뜻한다. 천주교와 기독교도 ‘하나의 신약교회’다. 어떤 특정 종파가 ‘두 촛대’가 아니다. 어떤 특정 인물이 ‘두 감람나무’가 아니다. 두 감람나무가 되려면, 반드시 “주 예수”앞에 서있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검찰측 증인 나오세요?”
“피고측 증인 나오세요?”
같은 증인이지만, 어느 편의 증인인가? 계시록은 큰 범주에서 하나님과 용의 싸움이며, 어린 양과 큰 용의 싸움이다. ‘하나님과 어린양’은 큰 용을 상대로 ‘영적 말씀의 소송전쟁’을 하고 있고, 성도는 어린양의 증인이다. 어린양의 증인들은 ‘피흘림으로 깨끗함을 받은 흰 옷’을 입는다. 이것으로 분별한다.
어떤 종교단체가 자신들을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로 부르는 근거는 현실적 증거물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단체가 그러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계시록 13장을 주목해야한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그 짐승은 로마의 황제권을 말하는 것이 분명한데, 세상권력의 어떤 황제는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라고 했다. 예수님처럼 부활의 증거가 그들에게 있다. 심지어, 땅에서 나온 짐승은 ‘어린양’같이 두 뿔이 있다.
땅의 짐승이 우상을 만들어, 거기에 ‘생기’(生氣)를 넣으니, 우상이 말까지 한다. 이들에게도 ‘경배의 예배와 찬양’이 있다. 보여지는 형식은 어린양의 예배보다 더 거룩할 수 있다. 그러나, 용의 예배는 ‘용’을 찬미하고, 어린양의 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것이 근본적 차이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열 뿔과 일곱 머리가 있는데, ‘신성모독’이 써있다. 여기서 신성모독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인데, 보여지는 것으로는 “우상숭배”이며, “황제숭배”이다. 즉, 황제를 숭배하는 그들의 경배와 찬양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것이다. 땅의 짐승은 어린양같이 두 뿔이 있으나, 용처럼 말을 한다. 어린양과 비슷해도, 누구처럼 말하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모든 교회는 그래서 긴장해야한다. 어린양의 교회라고 해도, 어떻게 말하느냐가 핵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가? 용의 말을 대변하는가?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하는 것이 아니냐” (에스겔 13:7)
예루살렘에 평강이 있다는 예언의 묵시가 있었다. 거짓 예언이다. 그러한 예언을 향해 에스겔이 하나님의 묵시를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외치는 말씀이라도,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모두, 자신의 심령과 손끝과 발끝을 주의하며, 하나님의 말씀앞에 서있길 간절히 간구해야한다. “주 앞에 서야” 두 감람나무가 되며, “주 앞에 서야” 두 촛대가 된다. 예수님의 첫 번째 편지는 에베소 교회였는데, 그 편지에서 주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리라”고 경고했다.
13장에는 용과 두 짐승 이야기다. 바다 짐승과 땅 짐승이 있는데, 땅 짐승은 바다 짐승을 경배하는 존재다. “어린양같이”에서 땅 짐승은 제사장의 역할을 맡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들은 용처럼 권력있는 ‘종교권력자’에 해당한다. 바다짐승은 정치권력, 땅짐승은 종교권력의 상징인데, 땅짐승이 바다짐승을 경배한다. 그리고, ‘바다짐승’을 닮은 ‘우상’을 만들었다. 666은 바다짐승의 상징숫자이며, 네로의 히브리 이름을 숫자로 환산하면, 666이다. 네로는 로마도시가 불에 타면서 권력이 추락했으나, 그리스도인에게 화살을 돌리면서, 그 권력이 부활했다. 6대 황제 네로는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 이후, 곧바로 자살했다. (가이사를 사실상 초대황제로 본다면, 가이사-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티베리우스-칼리굴라-클라우디우스-네로로 황제계승이 이어졌다)
** 두 감람나무는 주 하나님과 예수님의 증인이고, 두 짐승은 큰 용의 증인이다.
** 두 증인에게는 하나님의 생기, 성령이 들어가고, 땅짐승이 만든 우상에는 짐승의 생기, 인위적으로 만든 교리의 생기가 들어간다. 공산주의가 대표적인 짐승의 생기다. 땅짐승은 곧 ‘유물론’과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