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1월 7일, 창세기 7장을 읽었다. 노아의 방주 사건이다. 노아 600세, 2월 10일에 방주에 들어가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됐다. 들어가고, 7일 후에 비가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비는 그치지 않았다. 40일이 지나고, 천하의 모든 산이 덮였다. 아라랏산은 티그리스강 유역에 있으며, 유속이 매우 빠르다. 그 시대 헬기 구조대도 없고, 엄청난 해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모든 산이 다 잠겼더라” (창7:18)
에베레스트 산이 잠긴 것이 아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천하의 높은 산’은 모두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심판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에 타야한다. 십자가의 방주는 ‘피흘림의 역청’이 있어서, 세상의 물이 침범하지 못한다. 각자 마음을 들여다보라. 충분히 오늘도 홍수의 범람이 일어난다. 우리는 두 강물 사이에 존재하는 에덴동산과 같아서, 광풍의 몰아침을 피할 수가 없다. 강물위에 뜨는 탁월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잠수함’이다.
최후의 심판은 ‘죽음’이다. 죽음을 피할 자 아무도 없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것을 놓을 때가 ‘권력의 죽음’이다. 돈있는 자는 ‘돈이 떠날 때’가 ‘돈의 죽음’이다. 살아있는 자는 ‘영혼이 떠날 때’가 ‘생명의 죽음’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라!! 그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죽음과 사망을 이기신 주님을 섬겨야한다. 그 이름속에 들어가야한다. 노아와 함께한 가족과 가축은 모두 구원을 받았다. 세상 명예와 권력의 높음이 무의미하다. 노아와 함께 한 개와 돼지와 닭은 그 종족을 보존받았다. 예수님께 영혼을 맡겨야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다”는 것은 창세기 1:2과 연결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했다. 또한 마가복음 7:48에서 예수님이 바다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간 사건과 이미지가 같다. 주님은 세상바다 위로 다니신다. 주님과 함께 하는 자도 자동적으로 세상 바위 위로 떠오른다. 천하의 높은 산이 물에 덮였다. 그처럼 주님은 천하의 높은 산, 헤르몬산에 올라서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셨다. 높은 산 위에 높은 분이 주님이시다. 십자가의 죽음도 걸어서 부활로 살아나셨다.
노아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준행하였더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반드시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고,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성령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이단교회는 ‘진리의 방주’가 아니다. 그곳은 피흘림의 역청이 없어서, 세상권력과 재물이 철철철 넘친다. 타락의 음녀가 그곳에 있다. 심판의 물이 이미 덮였으니, 그곳을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에 타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