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명을 보냈다가 참패를 당한 이스라엘 군대는 ‘아간의 범죄’를 찾아내, 증거물을 압수수색해서 사건을 해결했다. 이 사건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라헬의 드라빔과 상관있다. 야곱이 사랑한 라헬은 끝까지 ‘드라빔’을 버리지 못했다. 우상은 범죄의 근원지다. 자식을 너무 사랑하는 것도 ‘우상’이 될 수 있다. 드라빔 때문에 라반의 압수수색을 받았고, 나중에는 세겜족과 전쟁까지 치렀다. 라헬의 드라빔은 야곱가족의 모든 우상을 대표한다. 야곱은 세겜에서 모든 우상을 척결하고, 다시 벧엘로 올라왔다. 그것을 엘벧엘이라고 한다.
여호수아는 그 벧엘을 점령하기 위해 왔고, 첫 전투에서 패했다. 두 번째 전투는 ‘마지막 전투’라고 각오하고, 하나님께 전략을 묻고, 그 지역상황을 면밀히 파악했다. 아이성은 벧엘에서 세겜까지 들어가는 관문에 해당했다. 그곳이 뚫리면, 북쪽이 완전히 열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복병의 전략을 주셨다. 3만명, 또는 5천명을 벧엘과 아이 사이에 미리 매복했다. 아이성 서쪽이다. 아마도 남쪽으로 해서 매복했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북쪽으로 아이성을 공격했다. 그때,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에서 잠을 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백성을 점호하고, 다시 그 밤에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갔다. 여호수아는 전쟁의 맨 앞에 나섰다.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를 하고 전쟁에 임한 것이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 골고다 언덕에 올라서 십자가에 못이 박혔고, 무덤속까지 밀려났다. 그처럼, 여호수아도 골짜기 속으로 들어갔다가, 거짓 패배를 하면서 광야로 밀려났다. 가장 멀리, 그들에게 패배를 당할수록, 그것이 매복의 성공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매복을 성취시켰다. 완벽한 죽음은 완벽한 부활로 사탄을 무찔렀다. 우리 인생의 실패는 성령의 매복으로 승리의 깃발이 된다. 우리는 패배해도, 매복하신 성령께서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다.
우리의 전쟁은 하나님의 영적 전쟁에 속한 작은 전술일 뿐이다. 여호수아는 거짓 패배로 광야에 내몰렸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광야로 내몰려 사탄의 시험을 받았다. 그때 성령께서 예수님을 내몰았다. 성령의 매복이 있으니, 우리는 마귀의 시험에도 당당해야한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굶주렸고, 성전꼭대기에 메달렸고, 부귀영화는 거리가 멀었다. 그럴지라도, 성령과 하나님께서 맞은편에 계시니, 마귀는 독안에 갇힌 쥐다. 우리의 실패에 마귀가 갇혔다.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여호수아 8:18)
모세는 지팡이를 들어서 홍해를 가르켰고, 여호수아는 단창을 들어 아이성을 가르켰다. 홍해의 표적이 아이성에서 일어났다. 곧, 적군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 문을 적군이 직접 열었다. 승리는 적군이 하고, 패배는 여호수아가 하는 것처럼 연출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홍해사건이다. 이집트 군대에게 쫓긴 이스라엘 백성처럼, 여호수아 군대는 광야까지 내몰렸다. 그때, 복병의 홍해가 아이성을 불살랐다. 아멘!!
승리후, 여호수아는 곧바로 에발산과 그리심산으로 올라갔다. 이곳이 세겜땅이다. 가나안의 한복판을 차지한 것이다. 아이성 전투는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을 점령한 매우 중요한 전투였다. 에발산은 북쪽, 그리심산은 남쪽에 있는데, 서로 마주보고 있다. 에발산이 58m 더 높고, 민둥산이다. 그리심산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에발산은 925m 그리심산은 867m이다.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율법’을 낭송한다. 에발산은 ‘저주의 산’, 그리심산은 ‘축복의 산’이며, 이스라엘은 그 사이에 놓여있다. 인생은 에발산과 그리심산 그 사이에 놓여서, 오늘도 살아간다. 저주의 산에 올라 아이성이 될 것인가? 축복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인가. 세겜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던 그 장소다. 사마리아 여인이 말한 ‘이 산’은 그리심산이다. 주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주님이 있는 곳에서 예배하라”고 했다.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여호수아 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