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종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아가 4:10)
진실로 진실로 고백하면, 이단교회가 그 종교 지도자를 사랑함은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다. 김일성을 향한 그 사랑보다 더 열정적이며, 절대적이며, 유일하고, 특별하고, 탁월하다. 사랑의 강도는 과연 그러할진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이 그러해야한다. 본래, 그렇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그 사랑이 식은 자나 이단에 빠져 예수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예수’를 사랑하는 자나 무엇이 다를까.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참 신랑이며, 구원의 남편이다. 다른 남편은 없다. 어찌 남편이 둘일까? 어찌 신랑이 둘일까? 사랑은 배타적이며, 독점적이다. ‘성만찬과 십자가’는 약혼식이고, 성령강림은 약혼의 증표요, 재림은 결혼식인데, 어찌 신랑이 바뀌리요? 약혼한 신랑이 결혼할 신랑이다.
이단 교회 성도들은 모든 것을 배제하고, 그 지도자만 사랑한다. 남편까지 배제하고, 남편보다 아내보다 그 지도자를 사랑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그러해야한다. 그들은 예수보다 그 지도자를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그 지도자를 더 사랑한다. 하와가 뱀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그 지도자는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단교회 성도들이 그 지도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월등해야한다. 이것이 넘치는 열열한 사랑이다. 예수님은 모든 성도를 향해 “내 신부야”라고 부르고 있다. 주님이 신랑이니, 부름을 받은 모든 성도는 신부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지금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다”고 말씀했다. 구원의 남편, 사랑의 참 신랑은 예수님 외에 없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 不賣香)
매화의 일생은 아무리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여기서 ‘판매’는 ‘소리치다’는 뜻이다. 옛날 시대는 소리를 지르면서 물건을 팔았다.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그 향기를 떠들지 않는다. 왜냐면, 향기가 스스로 날리기 때문이다.
구원주는 구원받지 못하고 죽어도 구원주다. 십자가의 예수를 믿는 이유는 그가 구원주이기 때문이다. 구원주는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사탄은 구원주에게 자격요건을 묻고 있다. 구원주는 그런 자격요건이 없다. 예수님은 본래 구원주이다. 건물주는 세입자와 완전히 다르다. 우주의 건물주인 창조주께서 직접 이 땅에 내려오셨다. 건물주가 얼굴을 보일 때는 계약할 때다. 건물주는 건물의 로얄층인 맨 꼭대기에 살 듯, 성도의 머리는 주님이 거주하는 방이다. 머리가 몸을 사랑하듯, 주님께서 모든 성도를 사랑한다.
예수님이 땅에 얼굴을 보인 것은 ‘결혼의 계약’을 맺기 위해서 나타나셨다. 그 사랑의 향기가 2천년이 지났지만, 여전하다. 십자가의 피흘림을 믿는 자마다 신부가 된다. 이단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교리로서 ‘구원주의 자격요건’을 만들어서 떠든다. 그렇게 떠든다고 해서, 우주의 창조주가 바뀌지 않는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창조주는 영원하다.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신부야”라고 불러야만, 신부로 변화된다. 그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아가 4:16)
성령의 남풍이 불고, 환란이 북풍이 불어오면, 사랑의 향기가 동산에 흩날린다. 환란이 일어나면 기도의 향연이 깊어지고, 신랑되신 주님께서 마음의 동산에 내려와 걸으신다. 주님은 기도와 찬양의 열매를 먹으신다. 이것이 주님과 성도가 사귀는 아름다운 사랑이다. 사랑하므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의 잔’을 마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신부가 된다. 어린양의 신부는 곧 십자가의 피흘림에 함께 하는 거룩한 성도들이다.
내가 주님께 감사할 것은 내 판단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 동산에 십자가의 선악나무를 두었음이다. 하나님께서 선악나무가 되어서, 내 생명을 보호하시니, 세상의 환란이 불어와도 선악나무이신 하나님께서 선악을 분별하여 나를 인도하신다. 내 생명은 주님의 선악나무의 보호아래 있노라!! 나는 도무지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겠기에, 오직 ‘십자가의 선악나무’를 믿을 뿐이다. 아내는 남편을 따르듯, 신부된 교회는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따름이 마땅하다. 사랑의 방향은 십자가요, 십자가를 거부하는 자들은 모두 주님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오!!! 이를 어쩌나!!! 십자가를 버린 자들이여!!! 주께로 돌아오라!!!